지식인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으로 살아남기

원제 The Intellectual (The Positive Power of Negative Thinking)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 발행일 2007년 11월 15일 | ISBN 978-89-8371-212-7 [절판]

패키지 양장 · 신국변형판 140x210 · 232쪽 | 가격 16,000원

책소개

마르크스, 사르트르, 촘스키, 도킨스……
무엇이 이들을 ‘지식인’이게 하는가?
자율적 지식인이 외로운 망명객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편집자 리뷰

올여름 한국의 인터넷은 ‘디 워 논쟁’으로 뜨거웠다.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ꡕ를 비판적으로 비평한 한 영화 감독의 개인 홈페이지를 「디 워」 팬들이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시작된 이 논쟁은, 문화 평론가인 진중권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겸임 교수가 「디 워」 팬들과 일부 네티즌들을 “대중 파시즘” 또는 “파시즘적 군중”이라고 비판하면서 확대되었다. 지금은 영화도 끝나고 논쟁도 수그러든 상태이지만 한국 사회에 논쟁 문화, 지식인과 대중의 관계 등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할 문제들을 던져 주었다.
「디 워」 팬들의 폭력적 행동은 “파시즘적 군중”이 몰려다니며 자행한 “폭력”이었을까, 아니면 “평론가와 평론가 지망생, 그리고 인텔리들끼리 읽는 평론을 쓰는 평론가”들에 대한 “대중의 반감”(김규항)이 폭발한 것이었을까? 그리고 “파시즘적 군중” 혹은 지식인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대중 앞에서 지식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한국 사회의 지식인들은 한국 근대사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중 혹은 군중 집단 앞에 아무 대비 없이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사회 밖에서 ‘지식인(intellectual)’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참조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침묵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지적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다. -본문에서

영국 워윅 대학교의 교수이자 사회 인식론의 개척자로 이름 높은 스티브 풀러(Steve Fuller)이 마키아벨리의 ꡔ군주론ꡕ을 모델 삼아 저술한 지식인론인 ꡔ지식인 :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으로 살아남기(The Intellectual)ꡕ는 한국 사회의 지식인들에게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 줄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브 풀러는 올해 초 번역 출간된  ꡔ쿤/포퍼 논쟁(Kuhn vs. Popper)ꡕ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패러다임의 개념을 정초해 현대 사상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토머스 쿤의 철학이 실제로는 냉전의 이데올로기 대립 구도와 국가의 과학 관리라는 권력 구조에 봉사했음을 지적한다. 쿤 이후 과학사, 과학 철학 분야는 과학에 대한 비판 능력을 잃고 과학자들이 내놓는 증거와 추론의 관계를 치밀하게 분석하는 전문적인 학문으로 주저앉고 말았다고 주장하면서 과학의 방법론과 결과를 비판적으로 봤던 포퍼의 비판 정신, 반증 가능성을 지적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비판 정신을 강조한다. 이 책은 내용적으로도 많은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식인’ 분석의 새로운 틀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문제 의식은 이 책 ꡔ지식인ꡕ에도 이어진다. 풀러는 “이 책의 목적은 이른바 ‘지적 자율성’이라는 덕목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서술하고, 활용 가능한 모든 제도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것을 보존하고 장려하는 것이 정당함을 밝히는 데 있다.”라고 말하며 지식인의 핵심 덕목을 ‘지적 자율성’이라고 규정한다.

학자들은 와인 생산자, 지식인들은 와인 감식가

자신의 도움을 구하는 박쥐 신호를 찾아 고담 시의 밤하늘을 훑어보는 배트맨처럼, 지식인은 뉴스를 어느 절망적인 세계에서 나온 은밀한 구조 요청으로 읽는다.-본문에서

전문가와 검열관이 의견을 가로막고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오직 진실’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지식인은 의견 차이를 해소하고 정설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목소리도 고려하기 위해 ‘총체적인 진실’에 주목한다.-본문에서

지식인은 어떤 직업군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풀러에 따르면 지적 자율성을 바탕으로 지식을 활용한 활동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기존에 우리는 학자, 전문가, 언론인, 법률가, 과학자 등을 지식인이라고 뭉뚱그려서 불렀지만, 풀러에 따르면 학자라고 해서, 전문가라고 해서, 언론인이라고 해서, 법률가라고 해서, 과학자라고 해서 자동으로 ‘지식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풀러는 책의 많은 부분은 위와 같은 전문가 집단과 지식인을 구별하는 데 할애한다. 권력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그나 싱크 탱크, 컨설팅 회사 등지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학자(scholar)와도 지식인(intellectual)을 구별하면서, 지식인으로서 살아가려고 한다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지침들을 제시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지식인과 학자가 다른 것은, 지식인들이 “학계의 대죄(大罪)를 범”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한 조각에 대한 영원한 관점을 불완전하게나마 얻으려고 노력하는 대신 현재의 사태에 자극되어 현실 전체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발전시키고 교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은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시대, 아니, 자신의 생애에서 분리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식인들은 학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객관성, 엄밀성, 증거 같은 학문적 연구 지침이나 “오직 진실”로 확인된 것들만 말하겠다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따르지 않는다. 상황과 시대에 따라, 정치적 역관계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는 입장을 내놓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당시대의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풀러에게 있어 지식인들은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처럼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자신의 능력에 따라 지식을 활용해 대중들이 현실을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방법론을 제시해야 하며, 슈퍼맨과 배트맨 같은 슈퍼 영응들처럼 누구의 보수도 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충성을 바치지 않고 선과 악이 매일매일 뒤바뀌는 변화무쌍한 현실 사회에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악(惡)과 싸워 나가야 하며, 관념이 아니라 시대의 발걸음 속도에 발맞춰 타이밍 좋게 적절한 발언을 해야 하고, 단편적인 진실이 아니라 총체적인 진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풀러의 지식인은 이성이 사회를 바꾸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음을 믿는 존재이다. 때문에 그 이성의 힘을 과거의 사실을 아는 데에만 제한해 두고, 새로 지식 사회에 편입되고 있는 학생들을 교육 제도와 학술 제도에 가두어 두려는 스콜라주의와 대가 급 사상가들의 사상에 안주해 그들의 사상을 ‘정신의 원 스톱 쇼핑몰’로 소비하는 일부 학자를 혐오한다. 풀러의 다음과 같은 비유는 그가 생각하는 지식인과 학자의 관계를 정확하게 요약해 준다.

지식인들은 더 고차원적인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 학문 연구를 소비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대학은 포도원인 셈이고, 학자들은 와인 생산자, 지식인들은 와인 감식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와인 생산자의 존재 이유가 팔리는 와인을 생산하는 데 있다면, 감식가의 존재 이유는 어떤 음식에는 어떤 와인을 마시는 게 좋을지를 알려주는 데 있습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사회를 글자 그대로의 ‘정치적 신체’로 상상한다면, 지식인들은 영양분을 원활하게 공급하는 소화 계통을 일을 하는 셈입니다. -본문에서

지식인은 지식 생산자인 학자들에게 기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식을 가공 유통함으로써 학자들이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시키고 진화시키는 존재라는 게 저자인 스티브 풀러의 입장인 것이다.

지식인은 영원히 인류의 정신을 일깨우는 자극제이다!

학자와 다른 지식 관리자들과 지식인을 구분한 풀러는 한발 더 나아가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지침들을 제공한다.
풀러의 분석에 따르면 지식인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광맥을 찾는 탐광자(探鑛者)처럼 기존의 것과는 다른 새로움을 찾아다니는 존재인 동시에 누군가가 발견한 새로움이 진정으로 새로운 것인지를 따져 묻는 심문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식인은 상황에 따라 어떤 관념의 배양을 금지하는 검열관처럼 행동할 수도 있고 감춰져 있는 총체적 사실을 폭로하는 폭로가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인의 불안정한 이중성은 지식인을 대중의 불신을 받고 대중적 불만의 폭발을 정면으로 받아야만 하는 근본적으로 불리한 상황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궁지에 몰린 지식인은 자신의 자율성을 반납하고 권력자들이나 대중과 타협하는 법을 익혀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 한다.
풀러는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이러한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기본 지침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판단 능력을 잃지 않고 다양한 관점으로 보는 법을 배워라.
둘째, 무슨 생각이든,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라.
셋째, 어떤 관점에 대해서든 그것이 완전히 그릇된 것이라거나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마라.
넷째, 언제나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의 의견을 강화하기보다는 그것을 균형 있게 보충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라.
다섯째, 공공 사안과 관련된 논쟁에서는 진리를 위해 끈기 있게 싸워야 하지만, 일단 자신의 주장이 오류로 판명 나면 정중하게 인정하라. -본문에서

그리고 이 지침과 관련된 수많은 구체적 사례들을 소개한다. 미국의 진보 지식인인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촘스키가 9.11 사태를 두고 정반대 입장에서 벌인 논쟁,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의 문자 논쟁, 아이히만 재판을 둘러싼 논쟁, 죄르지 루카치와 마르틴 하이데거의 정치적 선택, 과학자 사회의 자율성을 둘러싼 쿤과 포퍼의 논쟁 등 지식인 세계를 불태운 수많은 논쟁과 쟁점을 압축적으로 소개하면서 지식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지침을 하나씩 하나씩 추출해 낸다.
이 지침을 통해 되살려 내고자 하는 지식인은 ‘보편적 지식인’이다. 학계이나 학계 같은 현대 사회의 공론장에서 더 이상 보편적 지식인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반전 문제에서 개인의 사생활 윤리까지 발언하던 사르트르 같은 지식인을 우리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학문의 영역은 엄청난 속도로 팽창, 발전했고, 이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이른바 보편적 지식인은 주장할 때와 양보할 때를 아는 유능한 전문가에게 굴복할 수 없다”고들 사람들은 말한다.
풀러는 이러한 주장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현대의 교육 제도가 부실하기 때문에 보편적 지식인이 양성되지 않는다는 사소한 비판에서 시작하여, 보편적 지식인에 대한 추방 요구가 인간 이성의 능력, 진보를 낳을 수 있는 이성의 힘을 부정하는 반동적인 사상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보편적 지식인’의 부활을 꿈꾸는 풀러는 지적 폐쇄 상태의 파괴를 깨기를 원한다. 논쟁이라는 백병전을 통해 의견 차이와 입장 차이를 비겁하게 얼버무리지 않고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새로운 행동으로 바뀔 미래를 명확하게 지적해 내는 일을 그만두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권력에 봉사하는 지식 관리자들에게 독점되어 있는 지식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풀러는 책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학자들은 과거를 다른 미래로 바꾸기에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식인들은 영원히 희망을 놓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결코 도전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다. -본문에서

19세기와 20세기, 역사 속에서 ‘지식인’의 활약이 이처럼 도드라진 시대는 없었다. 마르크스, 러셀, 사르트르, 촘스키, 도킨스는 지식의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고 시대정신을 알아보는 뛰어난 지적 감식안, 균형 감각, 그리고 ‘총체적 진리’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현대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겨 왔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선언되고 신자유주의가 전 지구를 덮은 지금,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대학, 연구소, 싱크 탱크에 고용된 전문가와 검열관 같은 ‘지식 관리자’들에게 점령당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일부는 푸코, 하이데거, 들뢰즈, 다윈 같은 대가들의 사상을 일종의 ‘정신의 원 스톱 쇼핑몰’로 이용하며 지적 생존을 유지하고 있고, 일부는 변화된 시대에 적응해 ‘지식 관리자’로 진화하고 있다.
지식 사회가 식민화된 현실 속에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계몽주의의 오랜 모토를 따라 행동하는 지식인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한국 사회의 지식인들도 보편적 지식인의 부활을 꿈꾸는 스티브 풀러의 말에 한번 귀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목차

서문
1장 지식인에 대한 네 개의 테제
2장 지식인과 철학자의 대화
3장 지식인에 관해 자주 하는 질문들
추기 지식인은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는가?
옮긴이의 글 지식인을 위한 ‘기묘한’ 변명
참고 문헌
찾아보기

독자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