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조건

스튜어트 월턴 | 옮김 이희재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 발행일 2012년 9월 28일 | ISBN 978-89-837-1446-6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8x220 · 552쪽 | 가격 22,000원

책소개

우리는 감정을 지녔기에 인간이다!성서에서 셰익스피어, 다윈, 프로이트를 지나 펑크록에 이르기까지 감정의 역사를 추적한다.
 
“감정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쌓인 느낌의 돌발적 분출이라고만 볼 수 없다. 감정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사회생활과 문화생활을 떠받치는 기반암이다. 어느 미래의 유토피아에서 우리는 감정을 전혀 안 느끼는 단계로 진화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설령 우리가 그런 단계에 겨우 도달했다 하더라도 그때는 벌써 우리는 인간이기를 멈추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본문 중에서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이후의 어느 미래, 인류는 인간이 지닌 감정이 모든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라 판단하고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함으로써 감정이 제거된 삶을 살아간다. 감정을 느끼고 표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에 음악이나 미술 등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들 또한 모두 금지되어 있다. 감정이 없는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인위적으로 감정을 억제한다고 인간에게서 감정이 완전히 제거될까? 국가 권력에 의해 개개인의 감정이 통제받고 감시당하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은 감정이 억눌러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거꾸로 감정이 인간에게 있어 필수 불가결한 조건임을 보여 준다.
 
우리의 삶은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지하철에 가방을 두고 내린 사실을 깨닫고 당황해 하고 갑자기 들려오는 크나큰 소리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며 으슥한 골목길에서는 사람 형상을 닮은 것만 봐도 공포를 느낀다. 경쟁 상대의 승승장구에 질투가 밀려오다가도 연인이나 오랜 벗의 격려 한마디에 금세 행복감에 사로잡힌다. 위정자의 위선에 혐오감을 느끼며 부당한 처우를 받는 일에 함께 분노하고,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상실에 슬퍼한다. 인간에게 감정 없는 삶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10가지 감정으로 살펴본 인간 문화와 역사
 
악마가 천사와 형제라면 질투는 사랑과 자매다. – 마리 프랑수아즈 카트린 드 보보
 
19세기 후반 찰스 다윈이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대하여( The Expression of Emotions in Man and Animals )』를 세상에 내놓은 이래 감정은 다양한 지역과 인종을 가로질러 인간 종 보편적이며 우리의 뼈대만큼이나 선천적이고 구조적이며 규칙적이라는 사실이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수많은 심리학자, 신경 과학자, 정신 분석학자들이 다윈이 인간의 기본 감정으로 든 6가지 감정―행복, 슬픔, 분노, 공포, 혐오, 놀람―을 중심으로 인간의 감정과 심리 상태를 분석하며 인간의 감정생활을 연구해 왔고, 감정을 유발하는 자극 요건과 우리 신체 내부에서 감정이 일어나는 기작, 감정이 표출되는 방식 등 감정의 생리에 대해 많은 이해가 축적되었다.
 
주변 세계로부터 유입된 자극에 대해 우리 내부의 신경계가 자동적이고 불수의적으로 일으키는 본능적 반응인 감정. 그러나 감정이 그저 돌발적이고 수동적인 신체 반응이기만 한 걸까? 최초에 감정이 인간에게 생겨났던 그때로부터 수백만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아프리카 대초원에서 농경 사회와 봉건제, 현대 도시 사회 등 환경이 달라지며 감정 또한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경험하지 않았을까? 행복과 혐오, 수치, 분노 등 개별 감정을 인간 사회가 정의하고 표출하는 방식에 시대상이 반영되지는 않았을까?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일어나지도 않은 감정을 거짓으로 꾸며 보이거나 타인의 감정을 애써 불러내고 조작하는 이들에 의해 감정의 역학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주)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한 『인간다움의 조건( Humanity )』은 감정을 생물학적 성질의 것인 동시에 문화적 성질을 지닌 것으로 바라봄으로써 인간의 문화사를 통해 감정의 문화사를 들여다보는 과감하고도 새로운 시도를 담고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문화사가인 스튜어트 월턴(Stuart Walton)은 다윈이 인간의 기본 감정으로 꼽은 6가지 감정에 더해 그 6가지와 충분히 구별되면서도 엄격한 뜻에서 감정으로 규정할 만한 4가지 감정, 즉 질투, 수치, 당황, 경멸을 덧붙인 10가지 감정을 가지고, 개별 감정이 처음 시작된 기원에서부터 국가나 언론, 광고 매체 등이 적극적으로 감정을 이용하고 조작하는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문학과 예술, 철학, 대중문화를 분석함으로써 감정이 어떻게 인간 사회를 바꾸었고, 또 인간 사회는 어떻게 감정을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문학과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감정 박물관
 
허영을 점심으로 먹는 교만은 경멸을 저녁으로 먹는다. – 벤저민 프랭클린
 
인간의 먼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아프리카 초원을 가로지르던 그때 대자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던 공포와 불안은 이제 정치권력이, 종교가, 언론이 적극적으로 끌어내는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지속되는 두려움은 분노로 바뀔 수 있다. 사회적 억압이, 통제가, 불평등이 집단적 분노를 낳기도 한다. 썩은 고기나 배설물 따위의 심각한 감염 위험성이 있는 대상을 인간이 피해야 함을 가르쳐 줌으로써 인간의 진화 과정에 기여했던 혐오는 이제 물질적 영역이 아닌 예술적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어떻게 피하려는 욕구가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일까?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 전쟁의 위협 없이 살아가는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이 수많은 문학 작품과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서 해피엔딩을 끝없이 재생산하는 것일까?
 
이 책은 크게는 10개의 장, 작게는 3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0가지 감정을 다루되 하나하나의 감정을 세 가지 각도에서 접근한다. 공포를 예로 들면 먼저 공포라는 감정의 기본형을 다룬다. 인류의 조상이 남긴 무덤과 동굴에 그린 벽화를 통해서 공포라는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거시적으로, 문명사적으로 성찰한다. 공포는 무서운 자연 앞에서 느끼는 원초적 감정이기도 하지만 무서운 권력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둘째 장에서는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의 저작을 통해서 권력이 인간에게 어떻게 공포를 유발하려고 하는지를 성찰한다. 권력 집단이 공포라는 타동사로 인간이라는 목적어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 준다. 마지막 장에서는 공포라는 감정이 개인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실존적으로 파헤친다. 약소국 프로이센을 유럽의 패권국으로 도약시킨 프리드리히 대제가 옷 갈아입기를 죽기보다 두려워한 까닭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한테 구타당하면서 겨우 지금의 자리로 올라선 자신이 다른 옷을 입으면 다시 낯설어 보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무서움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일화는 공포라는 감정이 개인을 어떻게 바꿔 놓는지를 보여 준다.
 
저자인 스튜어트 월턴은 《데일리 텔레그래프( The Daily Telegraph )》, 《옵서버 (Observer )》, 《가디언( The Guardian )》을 비롯한 각종 신문과 잡지에 문화사와 철학, 와인 등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는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문화사가이다. 문화와 역사, 문학과 예술, 철학을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과, 수북이 쌓인 방대한 양의 정보 속에 갇힌 복잡한 현상을 헤집어 핵심을 뽑아내는 저자의 분석력과 통찰력이 이 책 『인간다움의 조건』에서 특히 빛을 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참정권을 비롯하여 서양 사회에서 이루어진 발전은 예외 없이 분노의 거센 분출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단식 투쟁을 하고 의사당 유리창을 부수고 우체통에 불붙은 걸레를 던져 넣지 않았어도 과연 영국 여성들이 투표권을 쟁취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의심한다. 하지만 인간이 문명사회를 쌓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분노라는 감정을 터뜨린 것 못지않게 권력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죽이고 이겨 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민주주의는 경멸의 보편화라는 것, 다시 말해서 봉건제에서는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경멸했지만 민주주의에서는 피지배자가 지배자를 경멸한다는 지적, 산업 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영국에서 에티켓이 발달한 것은 부를 거머쥐고 무섭게 상승하는 부르주아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그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귀족들이 자기들끼리만 알아보는 복잡하고 정교한 경멸의 기법을 개발하는 데에 골몰했기 때문이라는 관찰 또한 새롭고 신선하다.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감정 이야기
 
양심은 자유롭지 못한 사회가 느끼는 수치의 자국이다. – 테오도르 아도르노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분노를 억누르지 말고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며 장려하다가도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분노에 대해서는 사회의 결속력을 붕괴시키는 역병이라 여기며 자제하고 억제하라 말한다. ‘심심풀이 애도’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연민과 슬픔의 공개적 표현이 과잉되며 연극적으로 변해 가고 있다. 기업과 언론, 정치권 등 거대하고 힘 있는 조직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한 방편으로 개인의 감정을 휘두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인간의 감정생활이 공적인 성향을 띠게 된 요즘, 저자는 감정을 한 개인의 신체 내부에서 끄집어내 문화와 역사라는 큰 맥락 속에 놓고 들여다봄으로써 감정의 본질, 나아가 인간의 본질을 고찰한다.
 
이 책을 꼭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다. 마음이 끌리는 감정부터 펼쳐 놓고 편하게 읽어 내려가며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에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독일의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눈뜨는 봄」,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모피를 두른 비너스』에 이르는 문학 작품들과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에이드리언 라인 감독의 「위험한 정사」를 비롯한 각종 영화들, 초현실주의 미술과 펑크 록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책 곳곳에 숨겨 놓은 보석 같은 인간 문화의 유산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가 소개

스튜어트 월턴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 《옵서버(Observer)》, 《가디언(The Guardian)》을 비롯한 각종 신문과 잡지에 문화사와 철학, 와인 등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는 영국의 저널리스트이다. 와인 산업을 해부한 『당신이 포도덩굴에서 들을 수 있는 것(You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과 알코올, 코카인, 카페인 등 다양한 중독성 물질과 인류의 문화적, 역사적 애착 관계를 밝힌 『아웃 오브 잇: 중독의 문화사(Out of It: A Cultural History of Intoxication)』로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외에도 『와인 세계 대백과사전(The World Encyclopedia of Wine)』, 『최고의 칵테일 책(The Ultimate Book of Cocktails)』 등 칵테일과 와인을 전방위적으로 다룬 40여 권의 책을 썼다.

이희재 옮김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독문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20여 년 동안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였으며 영국 런던대 SOAS(아시아아프리카대학) 방문학자를 지냈다. 현재 영국 옥스퍼드대학 동양학부에서 동아시아 영어사전의 역사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마음의 진보』『번역사 오디세이』『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미완의 시대』『새벽에서 황혼까지』『문명의 충돌』『마음의 진화』『시간 여행』『리오리엔트』『그린 마일』『몰입의 즐거움』『지오그래피』『소유의 종말』『브루넬레스키의 돔』『반 자본 발전 사전』 등이 있고, 저서로는 20여 년간의 번역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독창적 번역론 『번역의 탄생』이 있다.

독자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