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삼라만상이 찬란하게 기지개를 편다. 온 누리에 녹음방초(綠陰芳草), 짙푸른 푸나무들이 길길이 자라 활짝 핀 이파리를 가득 매달았고, 탐스러운 꽃송이를 머리에 인 예쁜 풀들이 아우러져 대자연은 풍요로움 그 자체다. 거기에다 새소리, 벌레 소리까지 더하여 웅장한 교향곡이 울려 퍼지고……. 그런데 저 우렁찬 생명의 에너지와 짙은 연두색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평생 산과 들, 온갖 곤충과 새, 동물들을 벗 삼아 자연과 생명에 대한 진정한 앎을 추구하고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하는 데 힘써 온 권오길 교수가 우리 강산의 사계절 생명 예찬을 담은 신작 『생명 교향곡』으로 돌아왔다. 달팽이 박사로 널리 알려진 권오길 교수는 고등학교와 뒤 이은 대학교에서의 오랜 교편생활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우리 주변의 자연에 대해 끊임없이 갖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자 『꿈꾸는 달팽이』를 비롯한 『인체 기행』, 『생물의 죽살이』, 『생물의 다살이』, 『생물의 애옥살이』, 『괴짜 생물 이야기』 등 수십 권의 책을 쓰고 대중을 위한 방송과 강의에 나서는 등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한 『생명 교향곡』은 저자가 강단을 떠난 후 한갓진 동네에서 직접 밭 갈고 씨 뿌리며 살아가면서 깨달은 사계절의 변화무쌍함과 생명의 신비로움을 예찬하는 자연 관찰 일기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시종 알콩달콩 살아가는 게와 조개의 멋진 ‘도움 살이’부터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의 슬픈 가난이 그 이름에까지 덕지덕지 달라붙은 ‘짚신벌레’, 바지랑대 사이에 걸린 빨랫줄을 사뿐히, 쪼르르 내달리는 재주꾼 쥐, 낚싯줄에 매달린 암컷에 주책없이 달려들어 줄줄이 딸려 나오는 바람둥이 홍어 수컷, 바다로 내려가지 않고 생뚱맞고 뜬금없게도 슬그머니 산간 계곡으로 내처 역주행하여 ‘계곡의 여왕’으로 살아가는 송어의 ‘잔챙이’ 산천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따라, 부엌에서 안마당에서 뒷동산 산책길에서 펼쳐지는 신비로운 생물들의 비밀스러운 생태 이야기를 조심스레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샌가 모든 생명의 삶의 터전인 자연이 내뿜는 생동하는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작은 생명과도 공존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 가고자 하는 시민들을 위한 교양서로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부산일보》
생명이 숨 쉬는 사계절 자연 관찰 일기
“요새는 밭 갈고 씨뿌리기에 눈코 뜰 새 없다. 손바닥만 한 밭뙈기가 나에겐 버거워 한바탕 쏘대고 나면 허리가 내 게 아니다. 그러하나 푸성귀도 뜯어 먹고, 몸 운동하며, 때론 글감을 줍기도 하니 일거삼득이다. 사실 밭에 사는 것이 몸뚱이 운동이라면 글쓰기는 영혼의 진력(盡力)이렷다. 밭갈이는 짬 내 하는 일이고, 대부분은 글쓰기에 참척한다. 몸이 예전만 못해 걱정이지만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 쓸 것이다.”
비목(碑木)에 수액이 흐르고 석불(石佛)에 피가 흐른다는 봄이 찾아오고 억수 같은 장대비와 화창한 햇살을 번갈아 선사하는 장장하일(長長夏日)과 만산홍엽(滿山紅葉)을 지나 소나무 잎마저 꽁꽁 얼려 버리는 매서운 겨울을 맞이하기까지, 저자는 주변 논밭과 산책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그마한 생명체에서부터 종국엔 우리 밥상과 식탁에 올라 먹을거리로서 우리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갖가지 동식물들을 담담히 관찰하고 꼼꼼히 기록하여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대낮처럼 훤히 밝힌 집어등의 불빛에 수면으로 떠오른 플랑크톤을 따라 몰려든 새우와 작은 물고기, 그리고 그들을 먹겠다고 잇따라 몰려든 오징어, 배곯은 구슬우렁이가 조개껍데기를 삭삭 갉아 내고 문질러 꿰뚫어 놓은 ‘죽음의 구멍’, 굴 따는 아낙, 달인들의 손길에 그만 제 짝을 읽고 너럭바위에 홀로 달랑 남은 납작하고 뽀얀 굴 껍데기들, 몹시 아리고 추운 엄동설한에도 끈질기게 버티며 겨우살이에 온 힘을 다하는 개구리와 뱀, 그리고 소나무 등 선연이던 악연이던 긴 세월 질곡의 삶이 만들어 낸 인연으로 함께 순환하며 살아가는 생명들의 모습에서 저자는 정녕 눈물겹게 아름다운 우리의 어머니 자연, 사계절 생동하는 삶의 터전인 자연을 한껏 펼쳐 보여 주고 있다.
황혼기에 접어든 노학자의 생명 예찬
“겨우살이란 사람도 그렇지만 어느 생물에게나 힘든 일이다. 그러나 몹시 아리고 추운 엄동설한이 있기에 우리는 봄의 따스함을 느낀다. 쫄쫄 배곯는 삶을 살아 보지 않고 어찌 배부름의 고마움을 알겠는가. 누가 뭐라 해도 봄 매화의 짙은 향은 차디찬 아픈 겨울을 머금은 탓이다. 나무나 사람이나 시달리면서 더욱 강인해진다. …… 어쨌거나 겨울이 깊으면 봄도 머지않다 하니, 소나무가 푸름을 되찾고 청개구들이 발딱발딱 뛰노는 포근한 봄이 오겠지.”
한평생 자연을 탐구하고 성찰해 왔으며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에도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으로 여전히 돋보기와 현미경, 그리고 책을 게을리 하지 않는 노학자답게 저자는 자연을 면밀히 관찰하고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온 우리 조상들의 지혜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이 풀어낸 자연의 신비를 동시에 들려준다. 봄가을 나무를 옮겨 심은 후 토양 미생물들이 잘 자라라고 흙구덩이에 막걸리를 출렁출렁 넘치게 부었다거나 논가에 앉아 장대로 찰싹찰싹 물 등짝을 두들겨 물결을 쫓아오는 거머리를 잡아들였다는 옛 조상들의 이야기에서는 경험으로 오롯이 이끌어 낸 과학적 발견을 엿볼 수 있으며, 울긋불긋 형형색색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꽃잎 속에서는 현대 화학과 물리를, 물방울이 묻지 않는 연잎이나 나비와 잠자리 같은 곤충의 겉껍질에서는 최첨단 나노 과학이 이루어 낸 최신 성과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해변의 지배자’인 바닷가 게들의 행동과 생태를 살핌과 동시에 ‘해조문(蟹爪紋)’이나 ‘해행문(蟹行文)’ 등 동식물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된 언어와 우리 문화의 풍성함을 들려주고, 감당할 수 있는 빗물만 머금고 나머지는 머리 숙여 미련 없이 부어 버리는 연잎이나 의연하고 넉넉한 품새를 풍기는 노거수(老巨樹)의 모습에서 우리 인간이 자연에서 배워야 할 지혜와 교훈들을 살갑게 이야기한다. 달팽이처럼 느리게, 그러나 속살이게처럼 영민하게 한평생 숲과 흙, 곤충과 새를 벗 삼아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으로 자연이 품은 비밀을 탐구해 온 노학자의 사계절 생명 예찬인 『생명 교향곡』을 읽어 가다 보면 바쁜 도시 생활에서 잊고 지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 강산이 선사하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다시 한번 깨닫고 그 아름다움에 만취하게 될 것이다.
들어가는 글 5
봄 9
식물의 생존 경쟁, 알레로파시 11
나비 날개의 나노 구조 17
꽃 색깔의 비밀, 안토시아닌 23
개골개골 개구리의 합창 29
모든 인류의 검은 할머니, 미토콘드리아 이브 35
수놈들의 생식 전쟁 41
살아 있는 단세포, 달걀 47
생명의 신비, DNA 53
신선의 손바닥, 선인장 59
의료에도 쓰이는 거머리 65
여름 71
누가 뚫었나? 조개껍데기의 구멍 73
개미들의 젖소, 진딧물 79
반딧불이가 내는 빛 반딧불 85
작은 흡혈귀, 모기 91
흙의 창자, 지렁이 97
도우미 식품, 막걸리 103
조개와 물고기의 공생 109
어머니는 숙주요, 태아는 기생충? 115
바람에 실려 온 항생제 121
가을 127
70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연꽃 129
버릴 것 하나 없는 벼 135
가을 산의 정취, 단풍 141
소금밭에 사는 염생 식물 147
알콩달콩 도움 살이, 속살이게 153
애달픈 이름의 짚신벌레 159
재주 많은 쥐 165
해님의 꽃, 해바라기 171
언제나 푸르른 소나무 179
마음의 창 185
겨울 191
농익은 김치의 과학 193
상서로운 영물, 호랑이 199
겨울철 진미, 홍어 205
다리인가, 팔인가? 오징어와 주꾸미 213
흰 토끼는 알비노 219
소와 미생물의 공생 225
돌에 핀 꽃, 굴 231
그림자 사냥의 고수, 민물가마우지 237
잔챙이 송어, 산천어 243
소나무와 청개구리, 생물의 겨울나기 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