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
글 강주상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발행일: 2017년 6월 16일
ISBN: 978-89-8371-849-5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8x220 · 336쪽
가격: 18,000원
분야 과학자 평전
수상/추천: 과학기술부ㆍ한국과학창의재단 우수과학도서,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선정 과학 고전 50
★ 서거 40주기 특별 복간
★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 과학 도서
★ 아시아 태평양 이론 물리 센터(APCTP) 선정 ‘과학 고전 50’
『이휘소 평전』 발간의 의미는 나에게 남다르다. 책을 쓴 강주상 교수는 고려대 시절 은사이며 이휘소 박사는 강주상 교수의 은사이니 나에게도 스승이 되는 셈이다. 또한 이휘소 박사는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의 이론 물리학부장을 지낸 선배이자 동료이기도 하다. 이런 개인적인 인연뿐만 아니라,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이휘소 박사의 면면을 제대로 기록한 책이 발간되었다는 것은 같은 물리학자로서도 기쁜 일이다. 이 책이 그동안 잘못 알려져 왔던 이휘소 박사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학자로서의 이휘소를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는 세계 물리학계의 선두에 서 있었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
― 김영기(시카고 대학교 교수)
세계 입자 물리학 연구의 메카인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에서 뛰어난 연구 업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한국인 물리학자였던 이휘소 선생. 그는 한국의 모든 물리학자들에게 ‘정신적 버팀목’이면서 ‘넘어야 할 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 이른,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으로 인해 그의 삶이 베일에 가려지거나 왜곡되어 왔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 책은 이휘소 선생에 대한 ‘가장 사실적인 기록’이라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데, 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아 온 제자 강주상 선생이 집필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책에서 당신은 소설보다 더 위대한 이휘소 선생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정재승(카이스트 교수)
이휘소 박사는 한국이 배출한 많은 석학 중에서도 학문적 업적이 탁월한 세계 최정상급의 과학자였다.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노벨상 수상이 확실할 것이라는 평가를 대다수의 학자들이 내릴 정도로 물리학계에 기여한 공로는 지대하다. 그가 거둔 성과는 이휘소 개인으로서도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세계 물리학계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후학들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더욱 뜻 깊다. 그는 이제 없지만 그가 남긴 성과들은 여전히 빛난다. 이 책을 계기로 많은 청소년들이 물리학을 비롯한 기초 과학 분야에 관심을 갖고 각각의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리게 될 그날을 기대해 본다.
― 오명(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이휘소에게 덧씌운 핵무기 개발 참여라는 암막을 벗겨 내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이휘소라는 이름을 들을 때 떠올려야 할 것은 그가 모든 종류의 힘을 통합하는 궁극적인 이론을 찾으려 한 빼어난 물리학자였다는 점이다.
― 이권우(도서 평론가)
『이휘소 평전』을 다시 펴내면서
이휘소 교수가 돌아가신 지 40년이 되는 올해 1월에 강 선생이 돌아가셨다. 강 선생이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사이언스북스와 『이휘소 평전』 재출간을 결정했고, 3일 전에는 저녁 식사를 하면서 벤 리 장학 재단에 약정한 10만 달러를 모두 완납했는지 나에게 거듭 확인을 했다. 그의 마음에는 항상 이휘소 교수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 강 선생은 유명한 지도 교수와 뛰어난 제자들 사이에서 본인은 가교 역할을 한 것 같다고 하며 스승과 제자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1980년대 연구비가 별로 없을 때 국제 공동 연구를 하며 제자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해 주기 위해 노심초사하면서도 제자들이 잘하고 있다며 많이 기뻐했다. 가끔 옛 제자들이 왔다 간 날이면 그들과 관계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선하다.
강 선생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며 한마디 하자면 ‘최선을 다하면서 산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학생들에게, 형제들에게, 그리고 우리 가정에. 학생들이 어떻게 능력을 발휘하도록 만들까 고심하던 모습, 형제들의 어려움을 능력이 되는 만큼 도와주려고 하던 모습, 없는 시간을 쪼개 딸과 놀아 주고 장난을 치고 수학을 가르쳐 주던 모습, 항상 바빠서 부족함이 많았을 나에게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살면서 어려운 일이 일어났을 때 그는 항상 10시간 이상 깊은 잠을 자고 나서는 “We are on the right track. Everything will be okay.”라고 말하며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하던 일을 계속하고는 했다. 마지막 2년간 병마와 싸우며 많은 불편함이 있었는데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모든 일을 스스로 하려고 애를 쓰던 모습이 생각나 지금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의 해맑은 빈소 사진이 보여 주듯 그는 가르치고 연구하며 76년간의 단순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왔다. 마지막까지 조의금을 고려 대학교 물리학과에 기증해 줄 것을 부탁하며 몸담았던 학교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했다.
『이휘소 평전』의 두 번째 출간을 기하여 저자 강주상 선생을 추모하며…….
— 최해림(강주상 유족, 전 서강 대학교 교수)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의 이론 물리부장이자 시카고 대학의 교수인 벤저민 리는 6월 16일 일리노이 주 키와니 근처에서 교통 사고로 참사를 당했다. 그는 콜로라도 아스펜에서 열리는 페르미 연구소 자문 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여행하던 중이었다. 벤저민 리는 소립자 물리 이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물리학자였다.”
1977년 6월 16일 《피직스 투데이(Physics Today)》에 실린 이휘소 박사의 부고 기사이다. 표준 모형 완성이라는, 20세기 입자 물리학의 금자탑을 쌓아 올린 위인들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던 이휘소 박사가 서거한 지 어느덧 40주기가 되었다. 수많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에 핵심적인 공헌을 하며 ‘노벨상 메이커’라고 불리던 그는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를 넘어 20세기 세계 최정상급 물리학자들의 귀감이자 롤 모델이었다. 최근에는 2012년 발견되었던 힉스 입자의 이름을 명명한 사람 역시 이휘소 박사라는 사실이 밝혀져, 학계에서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체감해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서거는 세계적인 비극이었고, 오늘날까지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를 비롯한 전 세계 물리학계가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잘못 쓰인 소설로 인해 온갖 소문과 억측이 난무하며 ‘핵무기 개발자’로 잘못 기억되기 시작했다.
이휘소 박사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 강주상 전 고려 대학교 교수는 잘못된 소설에 대한 법적 대응과 적극적인 언론 투고 활동을 통해 스승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은 2007년 이휘소 박사 서거 30주기에 맞추어 『이휘소 평전』 출간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언론과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어 전국 중·고등학교 및 이공계 필독서로 자리매김했다. 청소년 및 이공계 전공생, 그리고 과학자들의 롤 모델로서 이휘소 박사를 재조명한 이 책은 안타깝게도 출판사의 사정으로 절판되었는데, 지난 수 년간 아시아 태평양 이론 물리 센터(APCTP) ‘과학 고전 50’에 선정되는 등 재출간을 바라는 학계와 독자들의 목소리가 꾸준히 들려 왔다.
이에 부응하고자 저자 강주상 고려 대학교 명예 교수는 ㈜사이언스북스와 계약을 맺고 노환에 시달리며 재출간을 준비해 왔다. 지난 10년 동안 구판의 오류를 수정하고 이휘소 박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자신의 노력을 더욱 상세히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올해 1월 초 타계하면서 출간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게 되었다. 유족과 제자들, 그리고 ㈜사이언스북스는 그의 뜻을 이어받아 내용을 보강해 이휘소 박사 서거 40주기에 맞추어 『이휘소 평전』을 재출간하게 되었다.
이번 책에서는 저자의 기존 수정 사항과 더불어 유족 최해림 교수의 글과 「강주상 연보」, 「찾아보기」 등이 추가되었다. 또한 강주상 교수의 1호 제자 김선기 서울 대학교 교수가 이번 재출간 작업에 참여해 직접 쓴 부록 「이휘소와 강주상을 그리며」가 특별 추가 되었다. 세대를 거듭해 더욱 풍성하고 견고해지는 한국 과학자 평전의 걸작을 즐길 수 있다.
차례
이휘소 평전을 다시 펴내면서
이휘소 평전을 쓰면서
프롤로그
천재의 청소년 시절
1장 실험실을 가진 아이
2장 화학에서 물리학으로
미국 유학생 시절
3장 마이애미 대학의 특별한 신입생
4장 학생이자 교육자인 물리학도
5장 소립자 물리학이란
6장 상아탑 인간
고등연구원 시절
7장 팬티가 썩은 사람
8장 연애와 결혼
9장 연구 그리고 또 연구
10장 나도 당신에게 놀랐소!
스토니브룩 시절
11장 스토니브룩 시절
12장 게이지 이론
13장 노벨상 메이커
페르미 연구소 시절
14장 대학에서 연구소로
15장 참 입자 탐색
16장 한국 과학계를 위하여
비운의 급서
17장 비운의 교통사고
18장 비운의 날 이후
19장 소문과 억측들
에필로그
필자(강주상)의 회고
이휘소 연보
이휘소와 강주상을 그리며
강주상 연보
용어 해설
찾아보기
이휘소는 올바로 이해되어야 한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일그러진 영웅의 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이유에서 이휘소의 평전이 씌어진 것이다.
― 강주상
잘못 쓰인 소설 때문에 만들어진 이휘소 박사에 대한 온갖 소문과 억측들. 이 책은 그 잘못된 인식을 안타까워하며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한 제자의 결과물이다. 명강의로 소문난 저자답게 무미건조할 수도 있는 한 물리학자의 삶과 업적을 쉽고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 김선기(서울 대학교 교수)
양자 역학에 대해 열정적으로 공부한 이휘소를 만났던 것은 하늘이 내려 준 행운이었다. 그는 비가환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 방법에 관련된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 헤라르뒤스 토프트(199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저자 강주상 교수는 스토니 브룩 뉴욕 주립 대학교에서 이휘소 박사의 지도를 받아 박사 학위를 받았다.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에서 입자 실험을 선도하던 스승의 영향을 받은 그는 귀국 후 고에너지 실험 물리학을 전공하며 이휘소 사후의 한국 입자 물리학 2세대를 구성했다. 현재 이공계 전공생들이 한 번쯤 접해 보았을 『양자 물리학』, 『수리 물리학』 등의 학습서를 저술하여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이유 없다.”라는 법원의 판결로써 잘못 쓰인 소설의 명예 훼손이 인정되지 않자 외부와의 단절을 선택한 유가족을 대신해 스승의 진실된 생애와 업적을 바로 알리는 데 온 힘을 바쳤다.
이휘소의 일대기를 다룬 이 책은 크게 6부로 구성된다. 1~3부에서는 물리학자로 성장해 나가는 이휘소의 모습을 다룬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국 전쟁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이휘소는 전과가 불가능한 한국을 떠나 물리학을 전공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경제적, 문화적 어려움을 극복하며 꿋꿋이 물리학의 길을 걷는 그가 결국 ‘상아탑 인간’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담겨 있다. 특히 5장 「소립자 물리학이란」은 앞으로 이휘소의 생애와 업적을 따라가기 위해 필요한 입자 물리학의 기초 지식을 다룬다. 후학 양성을 위해 노력해 온 강주상 교수가 직접 친절하게 설명함으로써 일반 독자들도 어려운 전문 지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전반부에 걸쳐 독자들은 천재 혹은 위인으로 여겨지는 이휘소의 알려지지 않은 청년 시절을 들여다볼 수 있다.
4부 「스토니 브룩 시절」은 유력한 노벨상 후보이자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만든 ‘노벨상 메이커’ 이휘소를 보여 준다. 11장 「스토니 브룩 시절」에서 이휘소는 공간 반전 대칭의 깨짐에 관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양진녕(楊振寧)의 권유를 받고 스토니 브룩 대학교 교수로 부임한다. 이곳에서 게이지 이론에 관한 그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12장 「게이지 이론」에서는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 문제로 고심하던 헤라르뒤스 토프트(Gerardus ‘tHooft)와 마르튀니스 펠트만(Martinus Veltman)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노벨 물리학상을 안긴 일화가 소개된다. 이휘소의 강의를 접한 대학원생 토프트는 이휘소가 사용한 수학적 방법을 자신의 연구에 적용하려는 발상을 하고 스승 펠트만과 함께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학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고 이휘소는 「비가환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라는 논문을 통해 토프트를 지원했다. 훗날 토프트는 이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상 소감을 통해 이휘소가 자신의 연구에 핵심적으로 기여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때는 이미 이휘소가 서거한 지 20여 년이 지난 시기로, 만약 이휘소가 생존했더라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3장 「노벨상 메이커」에서는 그가 ‘노벨상 메이커’로 불리게 된 또 다른 일화가 소개된다. 재규격화 문제는 표준 모형을 완성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재규격화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그저 하나의 가설로만 치부되었던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의 논문 「경입자 모형」은 이휘소와 토프트의 문제 해결 이후 궁극적 이론인 표준 모형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더불어 와인버그와 같은 수준에 도달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던 압두스 살람(Abdus Salam) 역시 이휘소가 재조명해 표준 모형은 곧 ‘와인버그-살람 모형’으로 불렸다. 살람은 곧 업적을 인정받아 1979년 와인버그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휘소는 현대 물리학을 10여 년 앞당긴 천재이다.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 부끄럽다.
― 압두스 살람(197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나는 공동 연구를 잘 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정말로 공동 연구를 즐겼던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휘소이다. 그와 몇 편의 논문을 함께 썼는데 우주론에 관한 논문은 널리 인용되고 있다.
― 스티븐 와인버그(197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이후 살람은 이휘소와 친분을 쌓고 자신의 조국 파키스탄에서 하계 물리 학교를 설립해 이휘소를 연사로 초청했다. 이를 계기로 이휘소는 한국의 과학 교육 발전을 이끌고자 하는 동기를 얻게 된다. 5부 「페르미 연구소 시절」에 이 모습이 잘 드러난다.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의 이론 물리학부장을 지냈던 이 시기는 이휘소의 학문적 절정기에 해당한다. 15장 「참 입자의 탐색」에서 이휘소는 당시 존재가 증명되지 않았던 참 쿼크를 포함한 강입자, 즉 참 입자의 존재를 예견하고 질량 범위를 예측한다. 불과 2개월 후 버턴 리히터(Burton Richter)와 새뮤얼 팅(Samuel Ting)이 그 질량 범위 내에서 참 입자를 발견하면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이휘소의 통찰에 다시 한 번 학계가 감탄하던 순간이었다.
한편 당시 이휘소는 서울 대학교 과학 교육 혁신을 위한 지원 사업 심사 위원으로 한국을 방문 중이었다. 16장 「한국 과학계를 위하여」에서 확인할 수 있듯, 한국 과학원 하계 물리 학교 설립을 추진했으나 유신 체제 강화를 이유로 철회한 바 있었던 이휘소가 한국 과학 발전에 대해 갖고 있던 의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활동이 1980년대 이후 국내 과학 교육 발전의 발판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한국 과학계의 크나큰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1977년 6월 16일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에 조기가 게양된다. 여기까지 이휘소의 일대기를 함께한 독자들은 6부 「비운의 급서」에서 거스를 수 없는 그의 죽음에 진정으로 안타까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후 왜곡된 이휘소의 모습이다. 19장 「소문과 억측들」에서 저자는 몇몇 오해가 빚어내고 잘못 쓰인 소설이 확산시킨 소문과 억측을 반박하고 나선다. 이 부분은 저자가 『이휘소 평전』을 집필한 목적이기도 하다. 이휘소의 전공인 입자 물리학이 핵공학과 같은 학문이라는 대중의 오해, 그가 연구원으로 지냈던 프린스턴 고등 연구원 원장 로버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가 맨해튼 프로젝트를 책임졌다는 사실,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에서 근무했다는 사실, 박정희의 친필 편지가 존재한다는 거짓말 등이 만들어 낸 잘못된 인식을 논리적으로 바로잡는다. 이휘소는 핵무기와는 거리가 먼 이론 물리학자였으며 오히려 핵 개발을 추진했던 한국 정부에 반대했던 인물이었다.
이휘소는 추상적이고 순수한 기초 이론을 추구하면서도 실험 결과를 잘 분석하고 이해하는 특별한 재능을 지닌, 탁월한 물리학자였다. 그는 20명의 현대 이론 물리학자 대열에 낄 인물이다.
― 로버트 윌슨(전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장)
이휘소 박사가 서거 직전에 와인버그와 공동으로 연구해서 발표했던 논문은 결국 유작이 되고 말았다. 입자 물리학을 천체 물리학에 적용시키면서 현재 암흑 물질 정체의 후보로 손꼽히는 윔프(WIMP) 입자를 제시한 그의 새로운 도전이 계속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이휘소 박사를 끊임없이 조명하고, ‘벤 리 장학 재단’을 설립해 인세 전액을 기증해 온 이유는 누구보다도 각별했을 그의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이휘소의 객관적인 일대기를 통해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미화해서 각색하지 않아도 이휘소는 충분히 훌륭한 물리학자로서 과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사실이다. 이 한마디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 전에 저자 강주상 교수마저 타계한 지금, 이휘소를 바로 기억하려는 노력은 전적으로 대중인 우리 몫이 되었다.
이휘소 박사가 어머니와 주고받은 100여 통의 편지, 유가족 및 학계 동료들의 증언, 그리고 이휘소 박사와 학문적으로 교류했던 스티븐 와인버그, 압두스 살람, 헤라르뒤스 토프트, 양전닝,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 저명한 물리학자들과의 일화를 통해 저자는 가장 정확한 이휘소의 모습을 그려 냈다. 비단 한 과학자의 명예로운 개인사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과학계의 역사와 전문 지식, 그리고 과학자들의 이데올로기까지 함께 담아내며 한국인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했던 과학자 평전의 걸작을 다시금 만나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