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야생 영장류학자의 습지 예찬

습지주의자

반쯤 잠긴 무대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김산하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 발행일 2019년 11월 30일 | ISBN 979-11-90403-10-8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8x220 · 312쪽 | 가격 19,500원

책소개

나는 습지에서 내 삶의 방식을 느꼈다

한국 최초 야생 영장류학자의 습지 예찬

 

이곳은 습하면서도 마르고, 말랑말랑하면서도 단단합니다. 물과 땅이라는 지구의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상호 이질적인 물질들이 마법처럼 공존하는 곳입니다. …… 두 세상의 경계이자 어엿한 하나의 독립 세계, 수분과 대지라는 가장 근본적인 생명의 가능성을 상징하고 의미하는 곳. 네, 그렇습니다. 습지가, 반쯤 잠긴 무대입니다.―본문에서

 

2019년 10월 26일 세계 최대 규모의 열대 습지인 브라질 판타나우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열흘 동안 1,000제곱킬로미터 이상의 습지가 불길에 휩싸였다. 브라질에서는 이미 2019년 여름 아마존 열대 우림에 산불이 잇따라 8월에만 3만 제곱킬로미터 가까이 타 버린 바 있었다. 판타나우 화재의 원인에 대해 브라질 마투그로수두술 주 정부는 기후 변화와 함께 인간 활동을 지목했다. 땅을 개간해 농지와 목초지를 확보하기 위한 인위적 방화가 최근 급증하면서 일부가 산불로 번졌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습지는 ‘노는 땅’, 개발되기를 기다리는 땅으로 폄하된다. 설령 지구 표면적의 6퍼센트를 차지하며 10만 종에 달하는 생명의 서식지라는 사실을 알더라도 이는 경제 논리에 의해 쉽게 뒷전으로 밀려난다. 간혹 일부 습지가 시혜적으로 생태 보전 구역으로 할당되어 개발을 면한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에 둘러싸인 채 다른 생태계와 연결되지 못하고 고립된 습지는 실질적으로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저 환경이 보전되고 있다고 우리를 안심시킬 뿐이다. 이처럼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공감하지만 생태학적 지식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거나, 생태학적 지식을 갖추었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가치와 감각 체계에 변화를 주는 것까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형식의 이야기가 요청되어 왔다.

생태학과 예술의 통섭을 모색하고 실천하면서 생태학의 목소리를 꾸준히 앞장서 내 온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 김산하의 신작 『습지주의자』가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픽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습지라는 공간을 생명의 서식지이자 다양한 생각과 감수성, 상상력의 원천으로서 조명한다. 생태학의 관점에서 습지가 지닌 독특한 위상을 탐구하는 한편, 습지가 선사하는 충만한 감각들을 도시 사람들에게 일깨워 줌으로써 생태적 관점을 체감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 생태학은 자연이 스스로를 표현하게 해 주는 언어이며, 픽션은 평범한 한 인물이 습지주의자가 되기까지를 탐구하는 형식이다. 본격적인 ‘생태 예술’로 꼽힐 만하다.

이 책을 쓴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이자 생명 다양성 재단의 사무국장인 김산하 박사는 이미 『비숲』(사이언스북스, 2015년)에서 과학적 탐구와 인문학적 사색을 결합한 글쓰기를 선보인 바 있다. 유유히 나무를 타고 달아나는 긴팔원숭이와 쫓고 쫓기는 모험을 펼치며 그들과 차츰 연결되어 간 그가 인도네시아의 열대 우림, ‘비숲’을 지나 이번에 당도한 곳은 습지다. 생태학 연구자인 그가 습지에 매료된 까닭을 이 책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페르난두 페소아의 연구자이자 그림작가, 비건이자 환경 운동가로 활약 중인 김한민 작가가 변화무쌍한 습지의 모습을 표지에 담았다.

 

“한국 최초의 야생영장류 학자인 저자가 습지를 향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책이다. 픽션의 형식을 빌려 습지를 생명의 서식지이자, 상상력의 원천으로 재조명한다.” —《매일경제》

“책을 통해 습지 생물의 다양성과 아름다움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비인간 동물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아는 ‘습지형 인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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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습지는 생성과 소멸의 변주곡이 울려 퍼지는 곳

 

이야기가 있으려면 해프닝이 필요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 사건을 중심으로 물결처럼 전개되는 구조이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많은 이의 삶처럼. …… 다른 동물도 그럴까? 그들도 대부분의 시간을 단조로운 일과에 시달리는 것일까?―본문에서

 

이 책은 ‘나’라는 인물이 영상 작품을 만드는 이야기가 ‘장’이라는 축으로, ‘나’가 듣는 습지 팟캐스트 「반쯤 잠긴 무대」가 ‘무대’라는 축으로 교차 배치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총 24개의 장과 무대로 이루어진 이 책은 ‘나’가 「반쯤 잠긴 무대」를 들으면서 생태적 감수성을 경험하고, 그것을 창작의 동력으로 삼아 영상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들려준다.

‘나’는 영화 만드는 일을 하며 현재는 부업으로 커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나’는 도시에 사는 도시 부적응자다. 아침에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세상으로 나와서 모든 것이 짜여 있는 연결망에 접어들었다가, 일을 하면서도 아무도 만나지 않고 해프닝이랄 것 없이 하루를 마치는 도시에서의 단조로운 삶을 되풀이하며 권태를 느낀다. 게다가 부업을 해 가며 만든 영상마저도 다수는 세상에 내놓을 이유가 없게 느껴진다고 ‘나’는 말한다.

그런 ‘나’가 어느 날 인터넷을 헤매다 우연히 「반쯤 잠긴 무대」라는 팟캐스트를 듣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마침 한 환경 단체로부터 영상 제작을 의뢰받는다. 두꺼비와 개구리가 이용할 ‘생태 통로’를 주제로 하는 홍보 영상이다. 처음에 ‘나’는 이 일에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하지만 팟캐스트를 들으며, 또한 세상 곳곳을 연결하는 것으로만 보이던 인간의 도로가 두꺼비나 개구리에게는 차단과 죽음을 뜻한다는 모순을 깨달으며 내면에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이 책은 사건이 전개되면서 도시인이자 창작자로서 ‘나’의 내면에 생겨나는 흐름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는 한편, ‘나’의 시선을 통해서 도시의 광경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물과 흙이 빚어 내는 역동적인 세계

그곳의 물렁물렁한 존재들을 말하다

 

습지는 물의 자유분방한 움직임과 체류에 따른 하나의 결과입니다. 그래서인지 습지는 유난히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물의 흐름이 저절로 이른 곳이기 때문입니다.―본문에서

 

한편 ‘나’가 듣는 「반쯤 잠긴 무대」의 주제는 습지다. 제목 또한 습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습지는 과학적으로 말할 거리가 풍부한 소재다. 습지의 탄소 저장량은 미국이 4년간 배출하는 탄소의 총량에 맞먹으며 1차 생산량(식물이 자라나는 총량)이 가장 많고 질소를 고정하는 데다 홍수 피해까지 경감한다. 이처럼 생태학 연구가 규명해 낸 습지의 기능을 제시하고 있지만, 습지의 유익함을 들어 그 가치를 논하는 기능주의적 관점을 「반쯤 잠긴 무대」의 진행자는 경계한다.

그 대신 「반쯤 잠긴 무대」는 독자들로 하여금 습지 생태학 연구를 접하게 하고, 자신의 관찰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습지의 구성 요소인 물과 흙, 그곳의 생명체들을 새롭게 살펴보고 생태적 감수성을 연습할 기회를 제공한다. 물을 마시는 일련의 과정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인지해 보는 일상적인 연습, 찰흙으로 만든 땅 모형에 물길을 만들어 습지의 생성 원리를 살펴보는 연습 등이 각 장마다 독자들을 기다린다.

습지는 물과 흙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생명 조건이 중첩되어 생겨난다. 그렇지만 자연과 문명의 이분법에 길들여진 탓에, 물과 흙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왜곡되어 있다. 물에 젖는 것을 극단적으로 꺼리고 흙탕물을 더럽다고 느끼는 감각이 이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습지는 그곳에 사는 징그러운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곳, 그곳에 살지 않는 것들은 빠져 잠기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포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습지의 불가해한 생명력을 방증하면서, 생태적 관점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오늘날 우리의 감각부터 다시 설정할 필요를 보여 준다.

 

내가 발견한 연결의 끈은 동료애 같은 것이었다. 비슷한 처지에서 비슷한 삶을 구가하는 운명 공동체. …… 이 연결의 끈을 여태 왜 몰랐을까? 이 마르고 단단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울리지 않게 피부 호흡으로 물을 찾아 살아가는 같은 처지인데.―본문에서

 

생명과 죽음이 서로 용해되는, 섬세하고 풍요로우며 뿌옇고 불가해한. 이 모든 것과 그 이상인. 습지. 습지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라코타 족의 언어로 물은 ‘므니’라고 합니다. 허나 원래 의미는 ‘살아 있는 것들의 느낌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어떤가요? 저와, 습지와 연결되었나요? ―본문에서

목차

1장 / 무대 1 / 2장 / 무대 2 / 3장 / 무대 3 / 4장 / 무대 4 / 5장 / 무대 5 / 6장 / 무대 6 / 7장 / 무대 7 / 8장 / 무대 8 / 9장 / 무대 9 / 10장 / 무대 10 / 11장 / 무대 11 / 12장 / 무대 12

 

에필로그

참고 문헌

도판 저작권

작가 소개

김산하

서울 대학교 동물 자원 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생명 과학부 대학원에서 ‘까치에서 서식처 구성이 영역의 크기 변이와 번식 성공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여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 구눙할라문 국립 공원에서 ‘자바긴팔원숭이의 먹이 찾기 전략’을 연구하여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로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생태학자로서 자연과 동물을 과학적인 방식으로 관찰하고 연구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동료 과학자들이 연구한 내용을 일반인들에게 보다 설득력 있게 알릴 수 있도록 생태학과 예술을 융합하는 작업에도 관심을 가져 영국 크랜필드 대학교 디자인센터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 이화 여자 대학교 에코 과학부 연구원이자 생명 다양성 재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지역 사회에서 동물과 환경을 위한 보전 운동을 펼쳐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제인 구달 연구소의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 프로그램 한국 지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동생이자 일러스트레이션 작가인 김한민과 함께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 자연 생태계와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그림 동화 『STOP!』 시리즈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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