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흔들리는 촛불, 과학에 대한 칼 세이건의 마지막 성찰
부제: 과학, 어둠 속의 촛불
원제 The Demon-Haunted World
워서 부제: Science as a Candle in the Dark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발행일: 2022년 2월 28일
ISBN: 979-11-92107-22-6
패키지: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672쪽
가격: 30,000원
시리즈: 사이언스 클래식
분야 지구과학·천문학
✯ 칼 세이건 생전 최후의 저작, 완전 개역판
✯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선정 과학 기술 도서상 수상작
✯ 2022년 세계 기초 과학의 해 기념 출간!
“생전 마지막으로 펴낸 책에서, 저자는 과학에 대한 무지와 회의주의 정신의 부재가 낳은 유사 과학 유행을 그 기원과 역사로부터 현황과 대안에 이르기까지 깊게 성찰한다.” —《매일신문》
“외계인, 재앙, 초고대 문명의 초고도 과학 기술, 미스터리 서클, 악마 숭배,와 같은 사이비스러운 헛소리들의 허와 실을 파헤친다.” —《뉴시스》
책을 시작하며: 나의 스승들 … 9
1장 가장 소중한 것 … 19
2장 과학과 희망 … 51
3장 달의 남자, 화성의 얼굴 … 77
4장 외계인 … 105
5장 속임수인가, 비밀주의인가 … 131
6장 환각 … 155
7장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177
8장 네가 본 것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 209
9장 치료 … 229
10장 차고 안의 용 … 255
11장 비탄의 도시 … 283
12장 헛소리 탐지기 … 299
13장 사실이라는 가면 … 327
14장 반과학 … 365
15장 뉴턴의 잠 … 395
16장 과학자가 죄를 알 때 … 417
17장 의심의 정신과 경이의 감성 … 433
18장 먼지가 일어나는 것은 … 453
19장 쓸데없는 질문은 없다 … 469
20장 불타는 집에서 … 497
21장 자유로 가는 길 … 519
22장 의미의 노예 … 539
23장 맥스웰과 너드 … 557
24장 과학과 마녀 사냥 … 589
25장 진정한 애국자는 문제를 제기한다 … 617
감사의 글 … 636
참고 문헌 … 640
찾아보기 … 650
2022년 5월 미국 의회에서 50여 년 만에 미확인 비행 물체(unidentified flying object, UFO)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미국 국방부 차관과 해군 정보국의 부국장이 참석한 이 청문회에서 미군이 발견한 미확인 공중 현상(unidentified aerial phenomena, UAP. 미군 당국이 UFO 대신 사용하는 용어)이 2004년 이후 400건 발견되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 현상들이 지구가 아닌 다른 곳, 즉 외계에서 기원한 사건이라는 물질적 증거는 단 하나도 확보하지 못했다고도 보고했다. 전문가들은 UAP 또는 UFO 목격 사례 급증이 드론의 상업화와 연관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2021년 6월 갤럽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41퍼센트가 UFO가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이라고 믿는다. (이 수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8월 조사보다 8퍼센트 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실제로 외계인 납치가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 미국인 중에는 지구인 중 1억 명 이상이 외계인에게 납치된 적이 있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외계인 납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도 상당수의 미국인이 바이러스 유행이 빌 게이츠 같은 특정 자본가 또는 권력자의 음모이며, 백신 역시 접종자의 정신을 조작하기 위한 특수 물질이 들어 있다고 믿고 백신 접종을 거부했다. 한국에서도 창조론자 단체의 민원으로 생물 교과서에서 진화 관련 설명을 일부 삭제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고,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운동처럼 자연 치유를 내건 유사 과학이 유행하기도 했다.
왜 우리는 과학이 아니라 이런 유사 과학, 미신, 반지성주의를 믿는 것일까? 근거도 없고 효력도 없는 주장과 낭설이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암흑 시대라고도 불렸던 서구의 중세에는 고대의 악령이 마녀로 되살아났고, 현대에는 그 악령이 외계인으로 변신해 과학의 촛불이 미치지 않는 그림자 속에서 출몰한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행성 과학자이자 과학 전도사인 칼 에드워드 세이건(Carl Edward Sagan)은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펴낸 책,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과학, 어둠 속의 촛불(The Demon-Haunted World: Science as a Candle in the Dark)』(1995년)에서 과학에 대한 무지와 회의주의 정신의 부재가 낳은 이 유사 과학 유행을 그 기원과 역사로부터 현황과 대안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깊게 성찰한다. 반과학과 미신, 비합리주의와 반지성주의의 유행에 담긴 인간의 오랜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의심할 줄 아는 정신과 경이를 느낄 줄 아는 감성의 결합에서 탄생한 과학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않고는 이 경신(輕信)의 풍조를 막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10년에 걸친 조사와 성찰, 연구와 실천의 산물인 이 책을 통해 뜨겁게 보여 준다.
핵폭탄으로 상징되는 것처럼 과학이 그 어떤 시대보다 강력한 권능을 가지게 되었고, 동시에 과학자에게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부여되었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던 칼 세이건은 유사 과학의 범람으로부터 사람들과 사회와 문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누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역설한다. 과학자들이 나서지 않고 교육 수준이 떨어지고 지적 능력이 약해지고 알맹이 있는 토론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며 세상 사람들이 회의주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면, 과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와 개개인의 자유 역시 서서히 깎여 나갈 것이고 언젠가 깊숙이 침해당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과학이라는 촛불이 일렁이다 힘없이 꺼지면 외로운 노파와 무고한 어린 여성 들을 화형대에서 불태워 죽였던 마녀 사냥의 장작불이 다시 타오를지도 모르는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 골수성 혈액암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세이건은 자신이 평생 사랑해 온 과학의 의미와 가치, 본질과 방법을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알리는 게 자신의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과학과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뜨거운 옹호와 사랑을 독자들은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외계인이 타고 온 UFO, 외계인에 의한 납치 사건, 재앙으로 가라앉은 대륙, 초고대 문명의 초고도 과학 기술, 화성의 인면암(人面巖), 밀밭에 몰래 그려진 정체불명의 크롭 서클(미스터리 서클), 악마 숭배, 환생한 뉴 에이지 구루, 초월 명상, 심령 수술 같은 유사 과학, 유사 종교 등의 사이비스러운 헛소리들의 허와 실을 파헤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유사 과학의 허실을 파헤치고 그 허무맹랑한 논리를 탄핵하며 인간이 얼마나 속기 쉬운 존재인지, 심지어 자신조차 속이고 마는지 폭로하는 회의주의 도서들은 많다. 칼 세이건의 이 책 역시 이런 범주의 책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책의 특징은 이러한 사이비스러운 헛소리들이 반복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가 무엇이고, 쉽게 속고 쉽게 믿는 경신의 풍조가 인류 역사와 사회, 문화 속에서 야기한 참극이 무엇인지를 인간의 진화사와 문명사라는 보다 큰 맥락 속에서 위치 짓고 설명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이 책을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현대적 회의주의 운동의 핵심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이러한 사이비스러운 헛소리들의 바탕에는 과학의 오용, 과학에 관한 오해, 나아가 과학에 대한 반감이 있다는 진단을 바탕으로 세이건 스스로 생각하는 과학의 본질, 과학의 정신이 무엇인지 해설해 나간다. 세이건이 볼 때 과학의 핵심 정신은 인간은 반드시 잘못을 저지고 인간의 마음과 사고는 함정에 빠지기 쉬우면 심지어 자기마저도 속이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놓고 비판 정신을 단련해 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세이건은 20세기 후반 미국 사회 및 문화를 휩쓴 유사 과학 이야기에서 벗어나 수천 년간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종교인과 지식인이 온갖 논리로 옹호해 온 노예제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수많은 죄 없는 노파와 소녀를 불태워 죽인 유럽 문명 특유의 마녀 사냥이 어떻게 시작되고 확산되고 소멸했는지, 과학 기술을 추앙하고 발명가를 선망했던 ‘양키적 천재성’으로 가득했던 미국의 교육이 반과학으로 돌아선 게 무엇 때문인지, 인류 역사와 문화에서 다양한 사례를 골라 소개하면서 잘못된 사고의 함정에 빠진 인간이 어떤 오류를 범해 왔는지 생생하게 보여 주고,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데 회의주의적 사고와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려 낸다. 칼 세이건에게 있어 과학은 반증 가능성이라는 개념과 실험을 통한 검증이라는 실천을 통해 인간이기에 가진 필연적 오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비판 정신을 고양해 간다.
그런데 칼 세이건이 유사 과학 비판에 이렇게나 많은 에너지를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과학자들은 유사 과학이나 비슷한 주장을 그냥 무시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두 의자 효과’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며 창조 과학자(천문학에서 UFO 신봉자들이 하는 역할을 생물학 분야에서 한다.)와의 토론을 거부한다. 연단에 두 의자가 나란히 놓인 모습이, 그리고 양측이 같은 시간, 같은 비중으로 발언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두 의견 모두 일리 있는 대등한 의견이라는 착각을 심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이나 물리학자들은 UFO 옹호자들과 공개 토론을 거부하고 자칭 외계인 납치 피해자들과의 만남을 피한다.
그러나 세이건은 1970년대부터 UFO 관련 공개 토론회를 개최했고, 이 책을 쓰기 위해 외계인 피랍자들과의 만남도 서슴지 않았다. 어떤 과학자들은 이런 그에게 공개적 비난을 하기도 했고, 학계에서의 지위를 박탈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책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5장 참조) 왜냐하면 유사 과학의 뿌리에는 과학과 동일한 바람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우주의 경이로움에 대한 대중의 기호(嗜好), 과학이 발견한 새로운 지식에 대해 알고 싶다는 대중의 열망이 그것이다. 유사 과학은 대중의 이런 바람을 바탕으로, 과학의 회의주의적 본질은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으면서 과학의 방법과 결과, 또는 그 명성만 이용해 먹으려는 것이다. 칼 세이건은 유사 과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유사 과학은 강력한 감정적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과학은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사 과학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지 않지만 갈망하는 개인적인 힘(오늘날에는 만화책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에게 부여된 힘이고 예전에는 신에게 부여되었던 힘이다.)에 대한 환상을 부추긴다. 어떤 경우에 유사 과학은 사람들의 정신적 허기를 채워 주고 질병을 치료하고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약속한다. 유사 과학은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며 중요한 존재라는 믿음을 다시 준다. 유사 과학은 우리가 우주와 꼭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와 결부되어 있음을 보증한다. ―본문에서
이 유사 과학이 발호(跋扈)하고 유행하는 원인을 세이건은 과학 교육을 포함한 과학 대중화의 결여로 진단한다. 그리고 책 곳곳에서 과학 대중화를 등한시하는 학계의 과학자들을 질타한다. 그렇다면 과학과 유사 과학의 차이는 무엇이고, 유사 과학이 일으키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마도 과학과 유사 과학의 가장 큰 차이는 과학이 유사 과학(또는 ‘무오류’의 계시)보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오류 가능성을 훨씬 더 신랄하게 인정한다는 점일 것이다. 만약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오류(또는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잘못)는 영원히 우리를 따라다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용기를 내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 생기는 서운함이나 안타까움을 반성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면, 우리의 가능성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
과학을 보급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과학에서 이루어진 위대한 발견에도 온갖 우여곡절(迂餘曲折)이 있었음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어떤 오해가 있었고, 어떤 경로 변경이 있었으며, 변화를 완고하게 거부하는 이들과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이 연구 현장에서 어떤 갈등을 벌였는지 진짜 역사를 전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과학 교과서, 아니 대부분의 교과서가 이런 역사를 잘 다루려 하지 않는다. 인간은 몇 세기에 걸쳐 끈기 있게 집단적으로 자연을 조사해 왔고 그 결과를 증류해 왔다. 물론 온갖 일들로 점철된 이 증류 과정을 미주알고주알 상세히 설명하는 것보다는 이미 완성된 지혜를 화려하게 소개하는 편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과학적 방법이라는 것은 겉보기에 다루기 번거로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방법이야말로 발견 자체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다. ―본문에서
실제로 『코스모스』를 비롯해서, 칼 세이건이 평생 펴낸 30여 권의 책들은 그의 이 진단과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가 방대한 저술들을 통해 펼친, 과학 교과서가 가르쳐 주지 않은 과학자들의 이야기와 발견, 코스모스에 대한 탐구가 실제로는 인간에 대한 탐구라는 가르침 들은 그를 20세기 최고의 과학 전도사로, 과학 저술가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사반세기가 지난 2020년대에도 최고의 과학자로 기억하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은 칼 세이건의 과학관, 즉 과학의 본질, 과학의 방법, 과학의 의미, 과학의 윤리, 과학의 대중화 등에 대한 생각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필연적 오류 가능성을 전제로 한 회의주의, 반증 가능성과 실험을 통한 검증, 비판 정신을 단련하기 위한 헛소리 탐지기 등등, 언젠가 칼 세이건 연구자가 나온다면 연구하게 될 칼 세이건의 과학 사상이 핵심 개념들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칼 세이건의 정치관, 민주주의관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칼 세이건은 이 책 곳곳에서 과학과 민주주의의 유사성을 언급한다. 그리고 나아가 실질적 관련성도. 과학과 민주주의 모두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기본값으로 전제하고 그 오류를 수정하는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세이건은 과학과 민주주의가 동일한 것도 아니고 과학적 방법에서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에서 과학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책에서도 혼동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당연히 과학과 민주주의는 작동 방식이 기본적으로 다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제도와 정책은 투표로 결정되지만, 과학적 진리는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참과 거짓을 정하기 위해 투표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과학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버팀목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은 우리를 사실의 영역으로 초대한다. 비록 그 사실이 우리의 선입견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과학은 대안적 가설들을 먼저 머릿속에서 만들어 보고 그중 어느 것이 사실과 가장 잘 부합하는지를 알아보라고 권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그것이 아무리 이단적인 것이라고 해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것이 새로운 아이디어든 기성의 지혜이든 간에 가장 엄격한 태도를 유지하며 회의적으로 철저하게 검토하는, 매우 섬세한 균형 감각을 유지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종류의 사고 방식은 변화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본질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본문에서
이 책을 쓰던 1990년대 초중반 당시 세이건은 상당한 위기감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냉전은 끝났지만 사라지지 않는 분쟁, 세계화가 시작되었지만 거세지기만 하는 민족주의나 종교적 근본주의, 팍스아메리카나라는 위대한 승리로 한 세기가 마무리되었지만 산업의 공동화와 교육의 황폐화로 쇠락해 가는 미국, 태양계 끝까지 탐사선을 보내 지구 밖 세계의 놀라운 모습을 발견했지만 포장만 바꿔 가면서 출몰하는 유사 과학과 사이비 종교 들을 보면서 칼 세이건은 9․11 테러로 시작되고 팬데믹으로 마무리된 21세기 첫 20년의 혼란을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이 책의 제목과 그 부제, 즉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과학, 어둠 속의 촛불』에는 그의 우려와 희망이 짙게 배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세이건은 이 책의 상당 부분을 과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개혁을 역설하는 데 할애한다. 그가 제안했던 구체적 개선안 가운데 일부는 이미 시효가 다해 효력을 잃었지만, 그 기본 정신만은 여전히 곱씹어 봐야 하는 통찰로 가득하다. 칼 세이건의 말이다.
의심할 줄 아는 정신과 경이를 느낄 줄 아는 감성 모두 단련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기술이다. 이 두 가지가 어린 학생들의 마음속에서 사이좋게 결혼하는 것을 공교육의 주요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 경사스러운 가족 드라마가 대중 매체, 특히 텔레비전에서 제대로 소개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 둘을 사람들이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다시 말해 경이를 느낄 줄 아는 감성을 이유 없이 배척하거나 버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고 다양한 아이디어에 너그럽게 마음을 여는 한편, 증거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것을 사람의 제2의 천성으로까지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 될까? 그리고 증거에 대한 기준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든, 할 수 있다면 거부하고 싶은 것이든 똑같이 엄격하기를 요구해야 한다. ―본문에서
이 책은 1995년 연말, 그러니까 칼 세이건이 타계하기 1년 전에 출간되었다. (판권에는 1996년 출간으로 표시되어 있다. 판매는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타계 다음 해 그의 부인인 앤 드루얀(Ann Druyan)이 그의 글을 엮어 펴낸 『에필로그(Billions & Billions)』(1997년, 한국어판 2001년 출간)와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The Varieties of Scientific Experience)』(2006년, 한국어판 2010년 출간)을 유작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골수성 혈액암(백혈병)으로 고통 받던 그가 존명 중에, 생전에 펴낸 마지막 책이다. 2001년에 한국어판이 출판된 적이 있으나 절판되었다. 이 책은 같은 옮긴이인 이상헌 서강 대학교 전인 교육원 교수가 이전 한국어판에서 번역이 누락된 곳을 번역해 추가하고, 기존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고 필요하면 새로 옮겨 낸 것이다. 오랫동안 코스모스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칼 세이건 독자와 팬으로부터 재출간 문의가 있었고, ㈜사이언스북스에서 정식 저작권 계약을 통해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의 첫 출간과 2022년 한 세대 가까이의 시간차가 있지만, 칼 세이건이 던졌던 문제 의식들, 의심의 정신과 경이의 감성의 조화로운 결합의 필요성이 그 어떤 시대보다 커진 시대가 지금일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의 악령은 중세 때 마녀가 되었고, 냉전 시대에는 외계인으로 출몰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다른 이름으로 다른 가면을 쓰고 횡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칼 세이건이 비합리주의라고, 반과학이라고 비판했던 정신은 지금 탈진실(post-truth) 또는 반지성주의라는 탈을 쓰고 세상을 떠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 정신의 수호자였던 칼 세이건의 마지막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