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자 양자전기역학의 창시자도모나가 신이치로가 안내하는 물리학으로의 여행
지난해에 100주년을 맞이한 노벨상을 기념하여 세계 순회 전시회가 서울에서도 열리고 있다. 「창조성의 문화 – 개인과 환경」을 테마로 한 이 전시회(2002. 8. 23 – 11. 3, 로댕갤러리)는 물리학, 화학, 생리학ㆍ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등 6개 분야에서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개인과 단체에 수여된,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상의 역사를 소개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상을 받은 사람들이, 특히 과학 분야의 수상자들이 인류의 발전에 얼마나 위대한 기여를 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 그 수상자들의 업적이 학문적으로 난해할뿐더러, 그들이 자기 분야의 학문을 일반에 쉽게 전달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을 두고 볼 때, 세계적인 석학인 그들이 자기 학문 분야를 소개하는 글에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자기 분야를 잘 이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확고하게 정립된 과학적 세계관과 더불어 범인류적 사고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 『물리학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도모나가 신이치로는 양자전기역학의 기초를 확립한 공로로 리처드 파인만, 줄리안 슈윙거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과학자로서, 자기가 평생 연구해온 물리학이란 분야에 대해 일반인과 전공인 모두가 이해하기 쉽도록 잘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은 저자의 명성에 걸맞게, 교과서적인 물리학 입문서가 아니다. 저자는 보편적이면서도 독특한 자신의 과학적 기준 위에 물리학의 역사를 인물과 시대별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일본에서 물리학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이나 일반인에게는 교양서로,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에게는 자기 학문을 성찰하는 필독서로, 과학사 및 과학철학 연구자들에게는 주요 참고 문헌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 왔다. 이 책은 아사히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아사라기지로상[大仏次郞賞] 제7회(1980년) 수상작이기도 하다.
도모나가 신이치로는 다음과 같은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물리학의 역사적, 학문적 원점을 추적하면서 물리학의 형성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과학자가 논리 정연한 존재인가 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과학자는 한정된 인간 인식 속에서 모순 없는 학설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그 학설을 세울 실마리마저도 시대와 함께 변화해 간다. 다시 말해 과학에는 일종의 자가당착이 내포되어 있으며 과학자의 생각이나 행동도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과학자는 그 변화 속에서 과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일반적인 물리학 교양서에서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을 중심적으로 다루는 데 비해, 이 책은 역학의 창시자들뿐만 아니라 열역학의 창시자들인 카르노, 볼츠만, 맥스웰 등의 물리학의 형성 과정에 대한 역할을 상세하게 분석하는 것이 특징이다.
도모나가 신이치로는 「물리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들머리에서 물리학을 <우리를 둘러싼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주로 무생물에 관한 현상)들 속에 존재하는 법칙을 관찰에 근거해서 연구하는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규정한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역학의 성립사를 다루는 「힘의 물리학」, 2부는 열역학의 성립사를 다루는 「열의 물리학」, 3부는 열역학과 분자운동론의 통합 과정을 다루는 「입자의 물리학」, 4부는 과학과 문명의 관계를 다룬 강연 「과학과 문명」이다. 1부부터 3부까지 저자의 탄탄한 설명을 따라가면서 물리학의 역동적인 역사를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1부는 「힘의 물리학」은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 같은 물리학을 만든 위대한 과학자들의 연구 과정과 성과를 추적한다.
1장 「물리학, 밤하늘의 별과 함께 시작되다」에서는 신비주의적 중세 세계관 속에서 실증적인 물리학을 향한 돌파구를 발견한 케플러를 다룬다. 저자는 여기에서 단 8퍼센트의 오차도 용서하지 않는 실증적 정신과 피타고라스적 신비주의를 동시에 가진 케플러가 <케플러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천체 운동의 법칙을 어떻게 발견해 냈는지를 그가 사용한 수학적인 방법(기하학)과 그의 발상을 세밀하게 소개하면서 분석해 내고 있다.
2장 「그래도 지구는 돈다」에서는 지상 물체의 운동 법칙과 물리학을 <실증 과학>인 동시에 <논증 과학>으로 확립한 갈릴레오에 대해 다룬다. 그리하여 갈릴레오의 낙체 운동 법칙과 관성 법칙이 그 구체적 실험 방법과 근본적 아이디어가 상세하게 분석, 평가한다. 그리고 저자는 갈릴레오를 통해 앞에서 잠정적으로 규정한 물리학의 정의를 확장한다. 저자는 앞에서 이야기한 규정 속에 <인간이 적극적으로 자연에 뛰어들어 이끌어 낸 실험 사실>을 포함시키고, <자연 법칙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것, 그리고 현상 각각의 법칙을 개별적으로 발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몇 개 골라내서 그것으로부터 다른 법칙을 도출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드는 것>이라는 새로운 규정을 첨가한다.
3장 「하늘과 땅을 지배하는 하나의 법칙」에서는 케플러가 연구한 천체의 운동 법칙과 갈릴레오가 연구한 지상 물체의 운동 법칙을 하나로 통합한 뉴턴의 업적을 다룬다. 그럼으로써 관찰, 실험, 수학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본격적인 근대 물리학을 만들어 낸 뉴턴 역학의 성격을 기존의 학문적 성과에 비추어 설명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보편 법칙 체계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4장 「과학과 종교의 대립」에서는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 각각이 종교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분석하면서 종교에 예속되어 있던 과학이 점차 독립되어 나오는 과정을 보여 준다.
5장 「연금술에서 화학으로」에서는 천문학이나 역학이 아니라 연금술과 화학에서 진행된 물리학 형성 과정을 로버트 보일을 통해 설명한다. 신비주의적 인간의 이기적 욕망에 봉사하는 연금술에서 실증적인 앎을 추구하는, 새로운 학문의 태도를 밝힌 보일의 선언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2부 「열의 물리학」은 이전까지 자연계에 존재한 적이 없는 비(非)생체 엔진, 즉 증기 기관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열역학의 형성사를 추적한다.
6장 「기술과 물리학의 만남」에서는 물리학이 신비주의적 자연철학의 영향만 받은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기술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한 것임을 망원경, 펌프 같은 예를 통해 보여 준다.
7장 「새로운 시대의 개막」에서는 열역학 발전의 기초가 된 와트의 증기 기관 발명과 그것의 발전을 소개한다. 그리하여 물리학적 아이디어와 기술적 아이디어가 결합되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 준다.
8장 「불의 힘을 관찰하다」에서는 열역학의 창시자인 사디 카르노의 이론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콜레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생전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카르노의 논문을 중심으로 열과 동력의 관계를 다루는 물리학자들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차근차근 분석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理想) 기관을 머릿속에 가정한 다음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물리학의 발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카르노 기관> 또는 <카르노의 원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보여 준다.
9장 「열역학의 확립」에서는 톰슨과 클라우지우스가 카르노의 원리를 바탕으로 열 현상에 관한 법칙을 수학화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 준다. 즉 톰슨과 클라우지우스가 열소설이라는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한 카르노의 이론을 수정하는 과정과, 열역학의 양대 법칙(에너지 보존 법칙, 엔트로피 증가 법칙)을 카르노의 원리에서 도출해 내는 과정을 설명한다. 여기서는 관찰, 실험, 수학이 결합된 <물리학이 가진 엄청난 지식 생산력>을 잘 보여 준다.
3부 「입자의 물리학」은 근대 원자론의 형성과, 근대 원자론이 열역학과 통합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10장 「근대 원자론의 탄생」은 그리스 시대 이후 잊혀졌던 원자론이 돌턴과 아보가드로 같은 화학자 겸 물리학자 들을 통해 재발견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11장 「열과 분자」에서는 여러 가설로 분분했던 열의 본질에 대한 정의가 원자나 분자 같은 입자들의 운동으로 환원되어 가는 과정을 분석한다. 이 과정은 열 현상이 뉴턴 역학으로 환원될 수 있음을 의미하면서도, 또한 열역학(열학)과 뉴턴 역학의 성격이 서로 판이하다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저자는 물리학자들이 정확성을 요구하는 뉴턴 역학과, 따뜻함이나 차가움처럼 모호한 개념을 다루는 열학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열의 분자 운동론, 통계역학, 양자역학 같은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 냈다고 분석하면서 내적 정합성을 요구하는 물리학의 기본 규칙을 보여 준다.
12장 「열학과 분자 운동론의 결합」에서는 앞 장에서 이야기한 열학과 뉴턴 역학(분자 운동론)의 모순이 볼츠만과 맥스웰이라는 천재 물리학자들을 통해 통합되어 간 과정을 설명한다. <맥스웰의 분포>, <볼츠만의 정리>, <에르고드 정리> 같은 새로운 통계역학적 기법들이 개발되는 과정과 더불어 그것의 한계가 극복되는 물리학적 과정도 생생하게 보여 준다. (볼츠만이 자식의 작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자살한 이유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일반적인 물리학 교양서에서는 뉴턴 역학과 양자역학 사이의 공백으로 존재했던 볼츠만과 맥스웰의 업적을 상세하게 소개함으로써 그들의 성과를 물리학사적으로 자리매김한다.
4부 「과학과 문명」은 물리학(과학)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정리하고 전망을 제시한다.
13장 「마법에서 과학으로」는 자연에 대한 실증적인 관찰에서 출발한 물리학(과학)이 발전하면서 자연에 조작을 가하는 실험을 도입하고, 그 실험이 너무 발전해 자연을 대규모로 개조할 수 있게 된 경과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그러한 발전이 혹시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는 있지 않은지 그리스 신화, 괴테의 과학 비판, 노벨상 메달의 상징 등을 통해 고찰한다.
14장 「과학이 나아갈 길」에서는 20세기의 정치․경제적 상황 속에서 과학이 가진 부정적인 의미가 어떻게 확대․재생산되는지 분석하면서, 무한정 <보편 법칙>을 추구하며 다른 모든 현상을 물리학으로 환원시키는 <물리 제국주의>가 어떻게 조절되어야 하는지를 물리학자의 입장에서 반성한다.
많은 과학자들은 과학자에 세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보기 드물기는 하지만 파인만이나 에르되시처럼 광기에 가까운 천재성을 발휘하며 희극적 또는 비극적으로 삶을 사는 부류이다. 두 번째는 그보다 흔하기는 하지만 머레이 겔만처럼 아주 지나치도록 학구적이기만 한 부류이고, 세 번째는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다수의 부류이다. 도모나가 신이치로는 두 번째 부류에 가깝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는 세상과 타협하기보다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강한 과학자였다.
이러한 저자가 안내하는 물리학의 세계, 『물리학이란 무엇인가』는 청소년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과학과 우리 세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과학의 싹입니다.
잘 관찰하고 확인하고 그리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과학의 줄기입니다.
그렇게 해서 최후에 수수께끼가 풀리면, 이것이 과학의 꽃입니다.
―도모나가 신이치로
물리학이란 무엇인가1부 힘의 물리학1장 물리학은 밤하늘의 별들과 함께 시작되었다-케플러의 모색과 발견2장 땅에도 법칙이 있다-갈릴레오의 실험과 증명 3장 하늘과 땅을 지배하는 하나의 법칙-뉴턴 4장 과학과 종교의 대립 5장 연금술에서 화학으로-보일의 선언2부 열의 물리학6장 기술과 물리학의 만남7장 새로운 시대의 개막-와트의 발명8장 불의 힘을 관찰하다-열역학의 창시자 카르노9장 열역학의 확립-톰슨과 클라우지우스3부 입자들의 물리학10장 근대 원자론의 탄생-돌턴과 아보가드로11장 열과 분자12장 열학과 분자 운동론의 결합-볼츠만과 맥스웰4부 과학과 문명13장 마법에서 과학으로-첫번째 강연14장 과학이 나아갈 길-두번째 강연해설옮긴이 후기참고문헌/주(註)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