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30명
‘두 문화’와 ‘통섭’의 교차로에서 과학을 이야기하다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
각계의 쟁쟁한 지식인들 30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과학의 안과 밖, 그리고 변경 지대에서 과학의 부름을 받은 이들은 이 자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나름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가 기획하고 (주)사이언스북스가 펴낸 『과학이 나를 부른다 :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30편의 에세이』는 이들 30명의 다양한 경험과 진솔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과학의 안팎에서 과학을 바라보는 30개의 시선은 울타리를 뛰어 넘고 담을 허물어 나간다. 고등학교에서 이과와 문과를 나누듯이 별개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해 온 과학과 인문학의 두 갈래 길은 이따금 교차되기도 하고 나란히 달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 여러 갈래 길을 걷는 사람들은 비단 과학자뿐만 아니고 저마다 다양한 전공과 경력을 펼쳐 보이고 있다. 한때 천문학자가 되기를 꿈꾸다가 소설가로 변신하기도 하고 영문학도가 뒷날 과학 기자로 활약하기도 한다. 물리학 학사 학위와 철학 석사 학위를 지닌 과학철학 박사도 있고 중학교 과학실에서, 또는 대학교 강단에서 학생들과 만나는 교육자들도 있다. 여성으로서, 한국인으로서 과학에 내려지는 잣대에 고민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있어 과학은 문학이고, 철학이고, 정치이며, 삶이다. 20세기 중반에 제기되었던 ‘두 문화’의 벽을 뛰어넘어, ‘통섭’의 시대를 꿈꾸는 지금, 인문학자들과 과학자들의 만남을 중계하는 이 책은 한국 지성 사회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방향으로 지식 혁명의 물꼬를 트고자 하는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
과학 밖에서
과학과 인문학은 갈등과 경쟁, 그리고 혐오의 짝패가 아니다. 마주서서 상대를 비추어 주는 데서 서로의 존립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과학 바깥에서 과학의 안을 살펴보고 사유한 결과이다. 지정 우리에게 과학은 무엇이고, 이것이 우리 사회와 삶의 문맥에 들어올 적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곱씹어 보고 있다. 절대적이고 확고부동한 것에 주눅 들지 않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이 글들은 흥미롭게도 과학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다. -본문 중에서
나는 문장을 여전히 관념적으로 쓰기 좋아하는 한국 문학에 가장 필요한 것이 과학적인 사고라고 생각한다. ― 김연수(소설가)
정치학 자체가 하나의 생명 과학으로 변화하고 있다. 정치학은 여타의 생명 과학만큼이나 ‘생명’을 핵심 주제로 삼고 있다. ― 고병권(연구공간 수유+너머 추장)
“가장 과학적인 것이 가장 문학적이다.”라는 과학 짝사랑을 고백하는 소설가 김연수의 글에서 과학의 혁명성과 과학의 혁명적 문제 제기들을 철학이 받아 안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양 철학자 강신주의 글까지 과학 밖에 있는 지식인들의 글들은 인문주의자들에게 과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다채롭게 보여 준다.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를 경험한 이후 과학을 언제나 상찬할 수밖에 없게 된 인문학자들의 불편함과, 새로운 지식과 상상력의 보고로서 과학에 대한 기대가 지식인들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 있는 에세이들을 통해 그려진다.
과학의 변경 지대에서
영토의 끄트머리라 하면 흔히 긴장감이 흐른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접경 지역이므로 군사적 도발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다.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비유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생각의 틀을 바꾸어 보자. 국경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곳이 아니라, 땅과 바다가 만나는 갯벌로 말이다. 그곳이라면 긴장감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력의 잠재성을 발견하게 된다.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으로 이만한 비유가 없으리라. 서로 갈마들며 새로운 것을 낳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공간으로서 변경 지대가 되니 말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인문적이면서 과학적인 또는 과학적이면서 인문적인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혼융과 생성의 기쁨을 만나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본문 중에서
한국 과학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더 많은 관점이 공존하며 서로 건전한 비판을 전개해 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한국 과학의 발전을 위한 내실 있는 청사진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 김태호(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방문 연구원)
과학자들이 스스로를 비평하지 못하면 외부 비평도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과학 비평이 힘든 가장 큰 이유는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김동광(과학 저술가)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생물학과 달리 21세기의 생물학은 경쟁과 적대라는 개인주의적 경제학의 공리들과는 반대로 \’존재론적 공동체\’라는 코뮌주의의 공리들에서 시작할 것을 암암리에 요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이진경(서울 산업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
‘과학의 변경 지대’라는 단어는 미국의 사회학자인 마이클 셔머의 용어이다. 그는 정설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과학적으로 가치가 있고, 곧 정설이 될 이론들과, 과학이라고 주장을 하기는 하지만 사이비 이론으로 밝혀질 수도 있는 이론 등이 혼재되어 서로 경합을 벌이는 공간을 ‘과학의 변경 지대’라는 이름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과학의 변경 지대는 서로 적대국처럼 소통을 허용하지 않는 인문학과 과학의 경계 지대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변경 지대에서 과학을 연구하는 인문학자들은 과학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발언한다. 문학처럼 과학을 비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과학자들의 진실성을 따져 문고, 과학자의 연구 방법론을 해부한다. 그러나 동시에 과학이 펼쳐 놓은 지식을 바탕으로 인문학의 깊이를 심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생명의 기원을 설명한 공생 진화론에서 새로운 공동체 윤리의 아이디어를 얻고,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서양 과학이 동양에 주었던 충격을 검토하면서 동양 철학사를 재정립하고, 과학자의 연구 방법론에서 직관과 이론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얻는 것이다.
과학 안에서
과학이 인류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을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서 과학이 너무 멀리 벗어나 버리고 만 것이다. 동어반복이지만, 오늘 이곳에서 보내는 일상은 과학 기술의 힘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과학은 베일 속의 무엇인양 여기지고 있다. 소통이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베일을 걷어 내고 과학의 맨얼굴을 시민들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과학자들은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오로지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매진하고만 있을까. 회의하고 반성하고 고민하는 모습은 없는 것일까. 여기에 실린 글들은, 과학하는 사람들이 부여잡고 있는 화두가 무엇이고, 이를 풀어 가기 위해 어떻게 정진하고 있는가를 보여 준다. 우주와 생명의 비밀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과 이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고뇌가 잘 드러나 있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자연이란 놀라움으로 가득 찬 호기심의 보고인데, 미리 해답을 알려 주니 마치 결말이 뻔한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지루해지는 것이 아닌가. ― 오세정(서울 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이루어 낸 과학을 하는 인류, 호모 사이엔티피쿠스(Homo scientipicus)는 그야말로 소우주이고 우주적 결(結)의 결정판이다. ― 김희준(서울 대학교 화학부 교수)
이 부에서는 과학계에서 과학을 어떻게 보는지, 그 고뇌와 기쁨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다윈주의 안에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와 니체의 성찰을 넘어서는 혁명적 성찰이 있음을 보여 주고, 다윈의 후예들이 어떻게 세계 지식 사회를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의 글에서, 과학 교육의 근본 문제를 짚어내는 물리학자 오세정의 글, 기생충을 직접 먹으면서 실험을 해야 하는 기생충학자의 애환 속에서 과학 연구 윤리의 핵심을 발견해 내는 서민의 글처럼 과학 현장의 문제 의식들이 소개된다. 과학계의 맨얼굴을 드러내는 이 글들은 ‘두 문화’라는 장벽 속에 가려져 있는 과학자들의 성찰이 근본적으로는 인문학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지식의 거대한 통합을 향해 열려 있음을 잘 보여 준다.
크로스로드,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sia 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 APCTP)는 1996년 설립 이래 첨단 물리학 관련 학술 행사와 국제적인 공동 연구를 통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 13개 회원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연구자들과의 교류를 도모해 왔다. 일반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의 일환으로 APCTP가 2005년 창간한 웹진 《크로스로드》는 이 책의 원고들이 처음으로 실렸던 ‘에세이’를 비롯해서 공상 과학 소설이나 평론 기사들을 연재하는, 소통의 공간이다. 《크로스로드》는 그 이름 그대로, 과학과 인문학이 경계를 허물고 마주치는 교류의 장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창간 초기에는 과학자들이 주요 필진을 이루었으나 점차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현장의 일화를 풀어 낸” 과학자들의 에세이와 “지적 관심사를 배경으로 (넓은 의미의) 과학을 주제로 한” 인문학자들의 에세이가 고루 실리게 되었다. 올해로 창간 3주년을 맞이한 《크로스로드》가 두 권의 SF 소설(『얼터너티브 드림』, 『앱솔루트 바디』)에 이어 출간한 이 책은 인문학과 과학으로 쪼개져 있는 한국 지식 사회에서 대화와 소통을 촉구하는 동시에, 인문학과 과학이 어떻게 만나,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 힌트를 던져 주는 책이 될 것이다.
발간사ㅣ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 ― 김승환 기획의 말ㅣ 인문학과 자연 과학의 하모니를 꿈꾸며 ― 이권우
과학 밖에서
가장 과학적인 것이 가장 문학적이다 ― 김연수 / 어느 소설가의 과학 짝사랑 이야기 디카와 그 불만 ― 김병익 / 과학 기술 혁명에 대한 아주 사적인 저항인문 과학과 자연 과학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정남영 / ‘두 문화’를 넘어설 지식 세계의 연대 전략 테러리스트와 바이러스 ― 고병권 / 전 지구적 생명 정치의 시대, 과학과 정치의 새로운 관계망 포스트 글로브의 시대 ― 김용석 / ‘탈지구’ 시대에 재회하는 과학과 철학늦깎이 연구생의 자기 고백 ― 오철우 / 과학을 취재하며 과학사를 공부하며 역사를 읽는 과학 ― 최종덕 / 궁극 원인과 근접 원인에 대한 성찰불행한 미래를 피하는 방법 ― 신정근 / 과학자도 역사를 배워야 한다복학생의 아날로기아 ― 정진홍 / 종교와 과학의 분절과 중첩 안경을 새로 맞추며 ― 강신주 / 과학의 혁명성과 철학의 소임
과학의 변경 지대에서
과학 비평은 가능한가? ― 김동광 / 과학 읽기의 다양성을 위하여인간이 달에 마지막으로 간 때는? ― 김명진 / 우주 개발의 냉전적 맥락과 유인 우주 비행의 미래제너의 아들 ― 정영목 / 인체 실험과 과학 영웅담의 결탁 ‘격물치지’와 ‘과학’ ― 배병삼 / 동양의 경학과 서양의 사이언스가 만났을 때어느 과학 번역자의 소회 ― 이한음 / 한국에서 과학 번역을 한다는 것절대로 불후의 명작은 쓰지 않겠다! ― 이정모 / 과학 글쓰기의 출발점을 생각한다‘한국 과학’, 그 강력한 이름, 모호한 경계 ― 김태호 / ‘한국 과학’이라는 개념은 가능한 것인가?탐정, 미술 감정사, 과학자의 공통점은? ― 김용규 / 과학적 추론 방법의 비밀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어 ― 홍성욱 / 아인슈타인의 과학 사상생물학과 코뮌주의 ― 이진경 / 중-생(衆-生)의 존재론을 위하여
과학 안에서
버스는 이미 도착했다 ― 전중환 / 지식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다윈 혁명의 현재생명과 과학, 경쟁과 협동의 이중주 ― 장대익 / 과학계의 협동에 대하여과학은 즐거운 거야!? ― 윤소영 / 한국에서 과학을 가르친다는 것과학 교육 어떻게 해야 하나? ― 오세정 / 고등 과학 교육 현장의 고뇌엄마라는 이름의 굴레 ― 조아라 / 한국의 여성 과학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스트링 코스모스 ― 남순건 / 시간과 공간의 비밀에 도전한다책임지기 싫으면 몸 바쳐? ― 서민 / 한 기생충학자의 과학 연구 윤리 단상소통, 과학과 인문학의 공통 과제 ― 이성렬 / 분절된 지식 체계의 재통합을 위하여30년 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기술 ― 정재승 / 기계와 기술 속에서 과학 시대의 낭만을 읽는다우주적 드라마 3막 9장 ― 김희준 / 과학의 도(道)를 깨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