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시인 쳇 레이모와 함께 걷는 1마일의 산책길
내가 묘사하는 길은 고작 1마일에 불과하지만, 그 길은 우주만큼이나 넓은 영역을 아우른다. 나의 길은 특별한 길이 아니다. 오히려 그 길은 뉴잉글랜드의 전형적인 풍경 속의 평범한 길일뿐이다. 겨우 3000걸음만 걸으면 다 걸을 수 있다. 이 책의 요지는 그 평범함에 있다. 선입견을 버리고 주의를 기울이고 제대로 알고 경이를 받아들일 준비만 되어 있다면 어떤 길도 도(道)가 될 것이다.―(본문 중에서)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마을 노스이스턴에 신기한 산책로가 있다. 1마일에 불과한 짧은 거리이지만 전 우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이 길을 따라 마을 중심가에서 차츰 멀어지면서 숲을 지나 자갈길과 개울을 따라 들판으로 나가다 보면 어느새 정원으로 둘러싸인 스톤힐 대학이 나온다. 19세기 초 올리버 에임스가 세운 삽 제조 회사가 이 마을을 산업 혁명의 본보기로서 성장시킨 바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친구이기도 했던 올리버 에임스 2세 형제는 그 삽으로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를 놓았다. 공장이 이전하고 난 뒤 오늘날 노스이스턴은 대도시 보스턴의 베드타운 정도로 남아 있고 이스턴 자연 자원 보호 위원회가 관리하게 된 에임스 가문의 영지는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이상향의 모습을 닮은 채 마을 주민 모두의 것이 되었다.
바로 그 길을 37년 동안 매일 걸어 노스이스턴 마을의 집과 직장인 스톤힐 대학을 오간 쳇 레이모의 에세이가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1마일 속의 우주: 한 천문학자의 사계절 산책기』이다. 전작 『아름다운 밤하늘』과 『자오선 여행』에서 이미 유려한 필치로 깊이 있는 주제를 친근하게 펼쳐 보였던 저자 쳇 레이모는 일찍이 저명한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오늘날 일반인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과학자들 가운데에서 가장 박식하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칭한 바 있던 뛰어난 과학 저술가이자 천문학자이다.
쳇 레이모는 사소한 풍경 하나 놓치지 않고 그 안에 숨은 이야기 하나 흘려듣지 않으며 인간과 자연이 진정한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꿈꾸면서 매일 걸어서 일터를 오간다. 이 길을 걷는 동안 그가 담담하게 들려주는 생각의 단상들은 어느새 생명의 근원으로, 우주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동시에 아이들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미래를 조심스레 전망해 보는 데에 이른다. 충실한 안내자인 그를 따라 이 길을 함께 걷다 보면 어느새 우리 주변의 평범한 모든 것이 전혀 평범하지 않으며 심오한 우주 역사의 산증인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물리천문학 교수가 37년 걸으며 출퇴근한 1마일 속에 우주가 담긴다. 인간과 자연과 우주와 건축과 역사와 개인사가 1마일 길에 퇴적물처럼 쌓이듯 이 책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한겨레21》
길 위에서 만나는 자연 속 숨은 이야기
돌멩이와 들꽃 하나하나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다. 길에 있는 화강암 부스러기는 대륙들이 충돌했을 때 뉴잉글랜드를 가로질러 융기한 산맥의 한복판에 있었다. 개울가의 자주색 털부처꽃은 1800년대에 유럽에서 정원 장식용으로 들여온 뒤 들판으로 무성하게 퍼져 나갔다. 밤중에 다리 밑의 개울로 반사된 아르크투루스의 별빛은 우주 공간을 떠돌다 40년 만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며 풍경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본문 중에서)
이 길을 걷는 동안 저자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비단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뿐만이 아니고 돌멩이 하나, 들꽃 한 송이가 간직한 이야기 전부이다. 발부리에 채인 자갈은 수백만 년 전 히말라야 산맥이 융기한 조산 운동으로부터 생겨났다. 그리고 토착 식물인 아네모네 곁에 가득한 유럽 산 식물들은 300년도 더 전에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북아메리카에 발을 디딘 누군가의 망토 자락에 묻어 왔을 법도 하다.
쳇 레이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후 대서양을 오간 동식물의 여정에까지 생각이 미치는데, 이를테면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인 토머스 제퍼슨과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은 프랑스 박물학자 뷔퐁 간의 자존심 싸움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즉 신세계의 토착 동물이 유럽의 동물에 비해 몸집이 작고 기능이 떨어진다고 쓴 뷔퐁의 글을 읽은 제퍼슨이 반박을 위해 북아메리카의 거대한 말코손바닥사슴을 직접 보여 주려 했던 것이다. 물론 말코손바닥사슴은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 그만 썩어 버렸고 뷔퐁은 전혀 감명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유럽 인들이 처음 이주를 시작한 뉴잉글랜드 지방에 속한 만큼 쳇 레이모의 산책길 또한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던 시절의 울창한 숲보다는 다분히 영국의 시골 풍경에 가깝다. 저자가 천문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는 스톤힐 대학의 교정은 본래 에임스 가문의 대저택이 있던 자리이다. 마을과 대학을 잇는 길이 사계절 달라지는 다채로운 모습을 보이며 자연의 숨소리를 들려주게 된 데에는 이 일대가 양목장(Sheep Pasture)라 불리던 에임스 가문의 사유지로서 세심하게 설계되고 다듬어졌던 덕분이다.
인간과 길들여진 자연의 조화
우리 고장에서 푸른 울새가 부활한 것은 밥 벤슨 덕분이다. 밥은 푸른 울새들을 돌보고, 이 새들의 수를 기록하며, 점점 증가하는 집단을 도표로 만든다. 밥은 새들이 알을 품지 않는 시기에 새집을 청소하거나 둥지에서 일찍 떨어진 새끼들을 다시 올려 주기도 한다. 밥이 이 모든 일을 하는 것은 다른 동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새들에 대한 사랑과 자연 세계에 파묻히는 기쁨 때문이다. “은행에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는가가 성공의 척도라면 세상은 나를 실패자로 생각할 것입니다.” 밥은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여기 밖에서 나는 세상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자입니다.”―(본문 중에서)
매일 아침 쳇 레이모를 반기는 푸른 울새는 사실 DDT가 마구잡이로 살포되고 레이철 카슨이 『침묵의 봄』을 내놓은 시절 이후 30년 동안 노스이스턴 일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개발을 앞세운 산업 논리에 맞선 “작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일어섰고, 자연을 되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그렇게 일구어 낸 자연과 우리 일상의 삶의 조화이다.
20세기 초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구어 낸 부로 가꿔진 영지에서 자연을 벗 삼아 뛰어 놀던 에임스 가의 아이들은 쳇 레이모의 각별한 관심을 끈다. 그들이 양목장을 이스턴 자연 자원 보호 위원회에 기증함으로써 이 산책길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쳇 레이모는 자기 아이들이 어렸을 적 함께 양목장 언덕을 쏘다니며 새의 이름을 알아내기도 하고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지낸 날들을 회상한다. 동시에 그는 수십 년 전 같은 장소에서 뛰놀곤 하던 에임스 가의 아이들을, 그리고 그 아이들이 훗날 자신들의 놀이터를 소중한 자연 유산으로 남길 수 있도록, 아이들이 자연을 사랑하게끔 이끌어 주었을 그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우리에게도, 각자의 현관에서 이어지는 길의 궁극적인 방향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끔 한다.
1마일을 걷는 나의 여행은 나를 우주의 시초로, 태양의 중심과, 돌고 있는 DNA의 한복판으로 데려갔다가 도로 데려왔다. 그 여행은 또한 나를 새천년의 문턱으로 이끌어 주었다. 나의 손자와 증손자 들에게는 어떤 환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행성 진화가 이 길의 역사를, 즉 황야, 수렵·채집, 농업, 산업, 사이버 문화의 역사를 반복할까? 제3세계의 빈곤과 환경 파괴가 머지않아 우리 손으로 지킨 푸른 울새의 나무 둥지와 공동 채소밭에 굴복할까?―(본문 중에서)
쳇 레이모는 시냇물의 속삭임에서부터 잎 한 장, 돌 하나하나에 감춰진 자연의 법칙과 문제들을 발견해 낸다.―《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작가의 전작 『아름다운 밤하늘』과 마찬가지로 『1마일 속의 우주』는 독자가 자연과 사랑에 빠지는 동시에 그에 대해 숙고하도록 초대한다.―《오라이언》
단순한 정보의 나열을 넘어서는, 총체적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집중 조명하는 책이다.―《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우리 자신의 뒤뜰의 세계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시애틀 타임스》
쳇 레이모는 그가 관찰한 풍경으로부터 광합성, 지질학, 진화론 등에 관한 매력적인 논의를 이끌어낸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1마일 속의 우주』는 읽지 말고 그 안에서 산책을 즐겨야 한다.―《샌디에이고 유니온 트리뷴》
감사의 글 5 / 프롤로그 7 / 마을 15 / 숲 33 / 암반 기초 55 / 변두리 75 / 개울 95 / 탁 트인 들판 113 / 물가 초원 133 / 정원 153 / 에필로그 173 / 원문 출처 177 / 옮긴이의 글 181 / 찾아보기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