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일본 홋카이도에서 중국 동북부까지 백두산 화산재에 얽힌 비밀유사 이래 최대의 화산 분화, 10세기 백두산 대분화의 수수께끼를 밝힌다!
부제: 한국 고대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
글 소원주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발행일: 2010년 6월 15일
ISBN: 978-89-8371-114-4
패키지: 양장 · 신국변형판 145x215 · 464쪽
가격: 20,000원
분야 지구과학·천문학
최근 화산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고조되고 있다. 아이슬란드 에이야파야트라요크틀 화산의 분화로 화산재가 유럽을 뒤덮고, 미국 옐로스톤 국립 공원과 한반도 백두산의 화산 분화가 임박했다는 징후가 화산학자들을 통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 화산이 뿜어낸 화산재는 금융 위기 이후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한 아이슬란드는 물론이고 유럽의 항공망과 경제를 마비시키고 있다. 화산재뿐만 아니라 금년 초 아이티와 칠레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이나 백두산 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진들은 인류가 새롭게 시작되는 대규모 지각 변동의 시대에 직면한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유사 이래 화산 폭발이 인류 문명에 개입한 사례는 여럿 있다. 저 유명한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수비오 화산을 필두로, 일본의 기카이 칼데라 분화는 일본의 조몬 문화를 휩쓸어 버렸고, 18세기 말에 화산재를 분출한 라키 화산은 유럽 지역의 대규모 흉작을 유발해 프랑스 혁명 등 여러 역사적 사건의 간접적 동인이 된 바 있다. 또 19세기에 발생한 인도네시아 크라카토아 화산 폭발은 무시무시한 쓰나미와 함께 근대 세계를 뒤흔들었다.
그렇다면 인류가 역사 기록을 남긴 이래 최대급의 화산 분화 중 하나로 평가되는 10세기 백두산 분화는 인류 문명사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그러나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듯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에 대한 역사 기록은 전무하다. 기원후 900년대 언젠가 폭발해 중국 동북부 지역과 한반도 북부 지역을 화산재와 화산 이류, 기타 화산 쇄설물로 뒤덮었을 백두산 대폭발에 대한 기록은 중국에도, 한반도에도, 일본에도 없다.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의 지층 속에, 일본 동북부 지방의 지층 속에 화산재의 형태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역사 기록과 지질학적 기록의 갭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소원주의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은 역사학적 기록과 지질학적 기록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이다. 저자는 일본, 한국, 중국 등지에 흩어져 있는 백두산 화산 분출물에 대한 분석에서 발해 멸망의 미스터리를 추적한 역사학적 연구 성과를 오가며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을 중심에 놓고 한국 고대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 나간다.
책을 시작하며
서문 백두산이라는 꿈을 좇아
제1부 지구 최대의 화산 폭발
제1장 백두산-도마코마이 화산재
제2장 백두산과 발해 왕국
제3장 백두산 분화의 연대
제2부 백두산의 생성과 성장
제4장 10세기 백두산의 거대 분화
제5장 하얀 머리의 산
제6장 백두산 화산재의 지문
제3부 인류의 문명과 화산 분화
제7장 동아시아의 광역 테프라와 고대 문명
제8장 백두산의 미래
제9장 필드 노트
참고 문헌 / 용어 해설 / 찾아보기
최근 휴화산이었던 백두산의 화산 활동이 여러 가지 형태로 곳곳에서 감지되기 시작하면서 언론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의 백두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 그와 동시에 10세기 대폭발과 발해 멸망의 관련성에 대한 이야기도 언론은 물론이 온라인상에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발해가 멸망한 926년 직전에 백두산이 대규모 분화를 했고, 이때 발생한 화산재와 화산 이류, 그리고 기타 화산 쇄설물들이 발해의 동쪽 영토를 휩쓸고 파괴해 발해의 국력을 극단적으로 약화시켰고, 이 때문에 발해는 거란의 침공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계의 공식 입장은 백두산과 발해 멸망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우선 발해 멸망을 기록하고 있는 공식적인 사서인 『요사(遼史)』에 926년 발해 멸망 이전에 백두산 분화에 대한 기록이 없고, 동시대의 다른 기록에서도 그러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10세기에 분출된 백두산 화산재에 대한 지질학적 분석 결과(테프라 연대학) 백두산 분화는 926년 이후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지질학자들과 재야 사학자들은 테프라 연대학에 따른 분화 연도 추정의 오차 범위가 크기 때문에 다른 증거가 발견되면 백두산 분화 연대가 926년 이전으로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해동성국이라고 칭해질 정도로 강성한 나라였던 발해가 단 한 번의 전투만 치루고 며칠 만에 거란에 멸망해 버리고 만 것을 설명하려면 백두산 분화 같은 대규모 환경 격변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백두산 인근의 옛 신라도 지역(발해가 신라와 교역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길)인 천진, 김택, 무수단 같은 북한 내 지역과 중국 영토 내의 훈춘(발해 5경 중 동경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 같은 지역을 지질학자와 고고학자가 함께 조사하면 발해 멸망과 백두산 분화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주장한다.
과학 교사 출신으로 캐나다와 일본에서 지질학을 공부한 저자는 일본 히로사키 대학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0세기 백두산 화산재를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10세기 백두산 대폭발 시 일본까지 날아가 퇴적되었던 백두산-도마코마이 화산재를 발견해 세계 학계에 10세기 백두산 대폭발과 발해 멸망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한 마치다 히로시의 연구에서부터 시작해, 발해 멸망과 백두산 대폭발을 둘러싸고 지질학계(화산학계)와 역사학계가 벌인 논쟁의 역사를 치밀하게 추적해 나간다.
발해 멸망과 백두산 대폭발의 연관성을 밝혀내기 위해 탄화목을 뒤지고, 중국에서 일본까지 수많은 지층을 파헤치며 치열하게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의 분화 연도를 추적해 나가는 지질학자들과 생물학자들과 생태학자들 같은 과학자들의 모습이 책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마침내 일본과 중국의 과학자들은 백두산의 화산 쇄설물과 탄화목을 조사해 결국 926년 이전, 즉 발해 멸망 이전인 9세기에 백두산이 분화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를 발견해 낸다. 저자는 백두산 화산재를 둘러싼 연구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과정을 극적으로 그려 낸다.
그러나 실증적 기록과 고고학적 유물이 없다는 약점을 파고드는 역사학자들의 반격은 그치지 않는다. 또한 21세기 들어 세계 지질학계에서 백두산 화산재에 대한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서,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지층만이 아니라 호수나 동해 해저에 쌓여 있는 백두산 화산재 퇴적물(연호)에 대한 연구가 진적되면서 백두산 분화의 연도가 926년 이후인 930년경으로 좁혀지기 시작하면서 백두산 분화와 발해 멸망의 관련성을 지지하는 쪽의 세는 오히려 기울기 시작한다.
저자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자연 과학계와 인문학계의 논쟁사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하면서 인문학계와 자연 과학계의 성과를 한데 아우를 수 있는 방향으로 이 문제의 논점을 발전시켜 나간다. 발해와 백두산의 연관성을 단발성 분화 사건과 발해라는 한반도⋅중국 동북부 지역의 한 정권이 붕괴한 사건의 인과 연쇄라는 좁은 틀에서 바라보지 말고, 발해로 대표되었던 한반도⋅중국 동북부 지역 문명의 장기적 붕괴와 단절과 백두산 대폭발의 관계로 재해석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발해 이후 여진족이 후금을 세울 때까지 한반도⋅중국 동북부 지역에 본격적인 국가 체제나 사회 조직이 형성되지 못하고 단절되는 것에 주목한다.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킨 후 곧바로 발해의 강역에서 철수했고, 수많은 발해 부흥 운동이 일어났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거란에 진압되거나 고려 땅으로 망명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것은 발해의 강역, 즉 한반도⋅중국 동북부 지역이 새로운 국가 체제 또는 거대 사회 조직 또는 문명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처럼 넓은 지역을 일시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것은 당시로서는 백두산 분화밖에 없었음을 지적한다. 옥토와 도시와 마을이 순식간에 화산재로 뒤덮여 부석(浮石, 화산 분출물의 일종) 사막으로 변해 버렸는데 거기에 어디 왕후장상이 거들먹거릴 수 있고, 장삼이사가 농사를 있겠는가?
발해라는 한반도⋅중국 동북부 지역 문명의 한 지역 정권이 붕괴한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지역 문명 전체의 붕괴로 논의를 옮겨 시야를 넓히면 역사학계도 10세기 백두산 분화의 지질학적 사실을 받아들여 새로운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고, 지질학계 역시 역사학계와의 의미 없는 연도 맞추기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의 바람은 단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한국과 북한과 중국과 일본의 자연 과학계와 인문학계가 국경과 민족과 이데올로기와 분과 학문의 갭을 뛰어넘어 백두산에 대한 진정한 연구를 진행해 역사적⋅과학적⋅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지질학과 화산학이라는 전문 영역 속에 녹아 있는 통섭의 꿈과 학문에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위성 화면을 통해 백두산 주변의 지형을 보고 있노라면 큰 강의 평야부는 온통 화산 이류 퇴적물에 덮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 속에 발해 5경의 서경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렇게 혼자 흥분한 적도 있었다. 그 토지 위에 마치 비가 온 뒤 솟아나는 버섯처럼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생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낯선 곳의 노두에서 눈에 익은 이 화산회와 만나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면 잠시 작업을 멈추고 멀리 백두산이 위치한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깊은 상념에 잠겼었다. 이 백두산의 화산회는 사가들이 기록하지 않았던 그 시대와 그 시간들을 회고하게 한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는 과거에 그곳에 살다간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게 해 준다. 그곳에는 시가 있고, 꿈이 있고, 역사의 불꽃이 교차한다. -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