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과 양의 하모니와
의사와 환자의 소통을 추구하는‘낮은 한의사’이상곤
그의 한의학 이야기에는 역사와 문학 그리고 교양이 흐른다
지난 2011년 6월 29일, 한의약 육성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계기로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는 소식이 신문 지면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 법은 한의약의 정의를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하거나 이를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의료 행위와 한약사(韓藥事)를 말한다.”라고 수정했다.
한의사협회를 비롯한 한의계에서는 이 개정안을 통해 한의사가 전통 침이나 뜸 이외에 현대화된 전기 침 또는 레이저 침을 사용해 시술하거나 한약을 현대적으로 응용해 신약을 개발하거나 한약을 캡슐, 환제, 정제, 과립제, 시럽제 등으로 개발하거나 한방 의료의 진단, 치료, 재활 기술을 현대화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다고 환영하고 있지만, 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에서는 “한의사의 현대 의료 기기 사용을 용인해 준 개악이며 한의사의 불법 의료 행위를 조장할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는 상호 비판 광고를 신문에 서로 게재하기도 했고, 의사협회는 현대 의학 기기를 사용한 한의사들을 불법 의료 행위로 고발하기도 할 정도로 갈등은 격렬해지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와 한의계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갈등을 서양 의학에 기반한 의료계와 오랜 전통에서 출발한 한의계의 오래된 ‘밥그릇 싸움’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서유럽에서는 이미 수십만 명의 의사가 침술을 치료에 응용하고 있으며, 초대형 다국적 제약 기업 연구소들에서는 한의학의 본초학 고전인 ‘신농본초경’을 뒤지며 신약 개발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영국의 찰스 왕태자는 오래전부터 침을 맞고 있고, 미국의 팝 가수 머라이어 캐리는 한방과 양방의 협진(協診)을 통해 임신하는 데 성공하는 등,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동양 의학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지금, 의료계와 한의계가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는 것은 서양 의학의 지식과 한의학의 지혜를 결합할 경우 크게 성장할지도 모를 우리 의학의 잠재력을 갉아 먹는 일은 아닐까?
현대 의학과 한의학의 갈들을 단순한 밥그릇 싸움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동서양 논리의 싸움으로, 몸의 지혜를 둘러싼 학문적 논쟁으로 업그레이드시키려는 시도는 동양과 우리 민족의 삶과 경험 속에서 발전?축적되어 온 한의학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고조되는 지금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된 이상곤 서초갑산한의원 원장의 ‘낮은 한의학: 알기 쉽게 다가오는 한의학의 지혜’는 한의학의 핵심 논리를 수많은 역사적.일상적 임상 사례를 통해 소개하고, 한의학과 현대 의학의 접점을 모색하는 보기 드문 책이다. 물론 한의학계와 일부 의료계를 중심으로 현대 의학과 한의학의 접점을 모색하는 시도는 여럿 있다. 한의학의 경락과 현대 의학의 면역 림프계를 연결한다든지, 침술의 신경 과학적 효과를 분석한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책은 현대 의학이 이해할 수 없다고, 오류라고, 미신이라고 한마디로 무시해 버릴 수 없는 한의학의 논리, 동야의 몸의 지혜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대구한의대학교 교수와 같은 대학교 부속 한방임상시험센터 부센터장, 한의사 국가 고시 출제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초갑산한의원 원장이며 한방 안이비인후피부과 학회 상임 이사로 일하고 있는 이상곤 원장은 국내 한의계에서 이명과 비염 치료의 권위자로 이름 높다. 현대 의학으로도 아직 한계가 있는 이명과 알레르기성 비염을 오랜 연구와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한 침술과 처방으로 치료해 왔다. 대구한의대학교 재직 중에는 현대 이비인후과학의 성과와 한의학의 치료 및 처방과 결합하기 위해 다양한 융합적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책은 이러한 융합적 연구와 치료 경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상곤 원장은 현대 의학과 한의학의 결합, 그리고 한의사와 대중의 소통을 위해 우리에게 ‘낮은 한의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의학의 서양 과학의 성과를 이은 현대 의학보다 더 낫다거나 우월하다고 고집부리지 말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의학이 오랜 시간 다듬어 온 논리도 무작정 팽개쳐 버리지 말고, 올바르게 계승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한의학의 논리에 타당한 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주장하자고 말한다. 또한 환자와의 관계에서 전문가적인 오만을 버리고, 보다 낮게 임함으로써 환자의 몸이 말하는 징후를 진실하게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할 때만 한의학이 부자들을 위한 ‘보약 다리기’나 관념과 미신에 빠진 민간 요법에서 벗어나 5000여 년간의 역사 속에서 축적된 몸의 지혜를 계승, 발전시킨 진정한 의학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의사인 저자가 우리가 생활 속에서 한번쯤 품어 봤을 이런 의문점들에 대해 한의학의 핵심 논리를 근거로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서울신문》
“특히 승정원 일기에 기록된 이비인후과 관련 왕의 병증과 이에 대한 처방 내용을 보강했다..” —《동아일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몸의 지혜, 한의학
한의학은 이제 ‘낮은 한의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한의학의 접근 방법은 과연 과학적인가? 서양 과학의 기준에서 본다면 분명 아니다. 그렇다면 합리적인가? 그렇다. 한의학 안에는 자연을 이해하는 오랜, 또 하나의 논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한의학의 논리는 음양오행에서 시작된다. 음양오행은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자 논리 체계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지면서 그 논리와 체계에 대한 이해는 사라지고 그 효능과 결과에 대한 천박한 탐닉과 겉핥기식 얕은 이해만 남았다. 그러나 한의학의 메커니즘은 조선 시대의 경운 어전 회의에서 임금과 삼정승은 물론, 당대의 지성이 모두 모여 토론할 정도로 당연한 것이었다.
이상곤 원장은 이러한 한의학의 핵심 논리를 드러내기 위해, 우리를 역사 속으로, 왕들과 대신들을 치료하는 역사적 임상 현장으로 안내한다. 도가의 정기신(精氣神) 이론에 기반한 허준의 ‘동의보감’이 탄생한 사상적 배경을 찾아 서경덕과 박지화로 이어진 경기 파주 일대의 재야 철학자들의 서재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기도 하고, 소현세자와 정조 등 조선 왕 독살설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처방들을 일일이 분석해 낸다.
한의학의 역사와 사상 전반을 가로지르는 이상곤 원장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조선 왕 독살설을 주장하던 일부 학자들이나 저술가들의 한의학적 무식함이나, 절제와 금욕(禁慾)을 강조하는 잔소리를 하느라 정작 왕의 건강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조선 시대 성리학자들의 어리석음과 만나기도 하고, 처녀성을 감별하기 위해 음양오행 논리를 이용해 수궁사라는 처방을 개발해야 했던 고대 한의사들의 난감함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전염병의 전국적 유행 속에서 혈족을 모두 잃고 의학에 뜻을 둔 한의학 비조(鼻祖) 장중경의 비장한 결심도 마주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의학 지혜와 현대 의학의 지식이 결합된 공진단, 경옥고, 우황청심환, 마황 등 다양한 처방과 한약재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만병통치약으로 우상화된 홍삼이 가진 부작용이나, 다이어트 약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었던 마황의 역사나, 스트레스와 울화로 고통 받았던 조선 시대 왕들이 정말 사랑했던 우황청심환의 감춰진 이야기나, 나물 재료로나 쓰이던 냉이의 녹내장 치료 효과와 입시 때 시험장 문에 붙이던 엿의 한의학적 효능을 알기 쉽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동시에 이상곤 원장은 한의학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잘못된 처방과 치료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배격한다. 사스는 물론 에이즈와 암까지 뜸으로 처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단체들의 오류를 한의학적으로 치밀하게 논박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음양오행론이나 성리학의 프레임에 안주한 채 한의학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려 하지 않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비판한다. 한의학을 신비화하는 주장이야말로 한의학의 미래를 가로막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저자의 이러한 명확한 태도는 자칫 난해한 한의학의 용어와 이론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는 환자들과 젊은 한의사들에게 무엇이 따라야 할 처방이고, 무엇이 아닌지에 대한 길잡이를 제공한다.
전문가의 오만한 시선이 아니라 환자의 눈높이에서
만나는 5000년 한의학의 지혜
항생제 하나로 모든 질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현대 의학의 20세기적 신화는 21세기 초 조류 독감, 광우병, 사스, 같은 새로운 전염병의 등장과,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 세균 등의 확산으로 종말을 고했다. 하나의 질병을 정복하면, 새로운 질병이 등장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된 현재, 수천 년에 걸쳐 사람의 몸과 질병을 연구해 온 동양 의학, 그리고 그것을 한반도에서 계승.발전시켜온 한의학의 지혜는 소중할 수밖에 없다.
한의학의 오랜 지혜를 수많은 임상 경험과 연구를 통해 달여 내는 이 책은 우리 건강을 떠맡고 있는 하나의 기둥인 한의학을 과학의 눈으로, 현대의 눈으로, 합리적으로 읽어 내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이 지혜에서 ‘밥그릇 싸움’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추천의 말 5
보배보다 귀한 책─최원병 5│한의학 이야기 보따리─안규석 6
우리 가족은 갑산 마니아─조유식 8│낮은 한의학의 심원한 매력─강양구 9
책을 시작하며 14
1부 사람의 의학, 한의학 20
『동의보감』의 뿌리를 찾아서 37│의사 허준, 인간 허준 37│조선 침의 자존심, 허임 42
다산과 인두법 48│대장금은 최고의 의사였나? 51│사상 의학의 뿌리 55
마지막 유의 조헌영 58│화타가 죽은 이유 62│퇴계의 장수법 67
2부 왕의 의학, 건강의 왕도 71
세종 대왕을 괴롭힌 병들 77│밤의 제왕 성종 84
연산군이 백마에 집착한 이유 88│선조의 쉰 목소리 논쟁 91
소현세자 독살설의 미스터리 95│경종 승하 사건의 진실 101
문제적 인간 영조 106│정조 암살설의 한의학적 진실 111
사약(賜藥)은 사약(死藥)인가 118│조선 왕들의 온천 일주 122
3부 한의학의 논리 127
경락의 참 의미 133│관용의 치료법 140│이명 치료의 음양론 145
골드 미스 덮치는 매미 소리 149│기막혀? 귀막혀! 154
신종 플루의 치료약 158│해부학 교실 164│쓸개의 힘 168│비빔밥과 스시 172
처녀 감별법 176│침실의 평화를 위하여 180│월드컵과 성생활 184
4부 현대 의학이 카드라면, 한의학은 적금 187
가슴에 핀 민들레 194│검은콩 다이어트 198│김연아는 어지럽지 않을까? 202
남성 여러분, 산후풍을 아십니까? 205│누런 콧물을 찾아서 209
불면증과의 동침 215│소금은 금이다 218│쥐 뼈 임플란트 221
출산과 유산 224│코를 데워라 228│탈모와의 전쟁 231│황사와 맞짱뜨기 237
황장엽이 더 걸었더라면 240│발바닥은 정력의 샘 243
5부 약과 침의 하모니 247
신선의 영약, 경옥고 252│황제만이 먹던 공진단 256│홍삼에도 부작용이 있다 260
우황청심환 265│녹용의 두 얼굴 270│살 빼는 약 마황의 진실 275
자연 분만을 돕는 불수산 279│자하거의 비밀 282│해구신의 전설 285
굼벵이의 재주 288│무소의 뿔 291│왕의 음료, 우유 294│민영익과 개고기 297
엿 먹이는 이유 301│부럼을 우습게 보지 마라 304│냉이를 먹자 308
복날, 삼계탕에 열광하는 이유 312│국화 옆에서 316
메밀 냉면은 겨울이 제격 319│곤포와 하고초 322│침술과 불임 326
뜸이 만병 통치 치료법이라고? 329
한의학 문헌 및 용어 해설 335
찾아보기 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