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와 유니버시티 칼리지 연구원이 들려주는 언어의 과학

언어의 아이들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말을 배울까?

조지은, 송지은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 발행일 2019년 4월 19일 | ISBN 979-11-89198-62-6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45x215 · 296쪽 | 가격 18,500원

책소개

아이와 어른은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배운다

 

언어의 아이들은 어떻게 언어의 어른들이 되어 가는 것일까? 누구나 경험하지만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 누구나 궁금해 하고 누구나 알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해 주지 않았던 이야기. 알알이 구슬로만 흩어져 있던 그 이야기들이 두 언어학자의 손을 거치니 어느새 잘 꿰어진 보배가 되어 우리 앞에 놓인다. 속이 시원해지고 눈이 밝아진다.-신지영(고려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언어학과 아동학이 서로에게 다가가 하나가 되어 탄생한 책. 영유아의 언어 습득 단계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아이들의 음운론과 의미론을 알기 쉽게 설명하며, 뜨거운 주제인 이중 언어 발달을 파헤친다. 부모와 교육자들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정보가 가득한 이 책에 감사를 표한다.-최나야(서울 대학교 아동가족학과 교수)

 

영어 발음을 원어민처럼 할 수 있게 짚어 준다는 강의와 영상이 인기를 얻는다. 영국식 발음을 가르치는 특별 수업도 있다. 아이들은 ‘발음 교육’이 없이도 연속적이고 복잡한 음성 신호에서 자연스럽게 말소리 특징과 체계를 습득한다. 성인이 되어 외국어 발음을 배우기가 힘든 이유는 생후 약 6개월부터 뇌의 지각 체계가 모국어 소리에 최적화되도록 변화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첫 돌이 될 때쯤 말을 하기 시작한다. 말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보다 더 이전이다. 선천적인 핵심 언어 능력 중 하나가 상호작용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갓 태어난 아이들의 눈맞춤이나 응수 역시 말하기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은 주고받으며, 소통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인간의 말이 경이로운 것은 그 안에 무한한 창의력이 담겨 있어서이기도 하다. 이번에 ㈜사이언스북스에서 나온 『언어의 아이들: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언어를 배울까?』는 이 창조적 능력이 실제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살펴보는 한편 이제 막 세상의 문을 여는 아이들의 언어 습득 블랙박스를 들여다봄으로써 언어 습득의 숨겨진 원리를 살펴보는 책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언어학과 한국학을 가르치는 조지은 교수와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송지은 박사의 만남으로 탄생한 이 책은 두 언어학자의 학문적 탐구는 물론이고 실제 영국에서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두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로서, 외국어 화자로서 생활하는 경험까지 담겨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동아시아 학부(Faculty of Oriental Studies)에서 한국학과 언어학을 가르치고 있는 조지은(Jieun Kiaer) 교수는 서울 대학교 아동가족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언어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2007년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KCL)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Processing and interfaces in syntactic theory: the case of Korean」)를 받았다. 언어의 구조와 의미 연구를 수행하고 현재는 이중 언어 습득 관련 연구와 함께 국내외 학자들과 협력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2014년 출간된 『한국어 속에 숨어 있는 영어 단어 이야기』, 영국에서 출간된 『화용적 통사론(Pragmatic Syntax)』, 『상호언어적 단어(Translingual Words)』 등을 펴냈다.

현재 영국 UCL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송지은 박사는 서울 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2018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음성 과학 박사 학위(「The effects of adverse conditions on speech recognition by nonnative listeners: Electrophysiological and behavioural evidence」)를 받았다. 인간의 뇌파를 살펴봄으로써 말소리에 담긴 다양한 정보 처리에 관해 연구하는 한편 언어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이 실질적 언어 환경에서 ‘의사 소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언어적, 인지적 원리를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다. 음성학과 외국어 습득의 다양한 주제에 관해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며 활발히 연구 중이다.

언어는 배우는 것일까, 아니면 타고나는 것일까? 언어와 생각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태아에게 언어를 들려주는 태교는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소리가 존재하는 것일까? 2개 혹은 2개 이상의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린 나이에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거나 외국에 가서 살지 않고도 외국어 학습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언어의 아이들』은 4부에 걸쳐 아동 언어 발달, 음성학, 어휘와 문법, 이중 언어 습득이라는 큰 주제를 다루면서 다양한 관련 연구와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언어학, 구체적으로 언어 습득에 관심이 있는 학생과 연구자, 언어에 관심이 있는 대중, 또한 나처럼 아이를 키우며 경이로움을 느끼는 양육자 모두를 위한 책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완전하게 깨우친 후 영어를 습득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아이들의 언어 습득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언어학적 논제들과 연구 성과들을 쉽게 풀어 쓰고자 했다.-조지은(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한국학·언어학 교수)

 

아이들이 아무런 노력 없이 ‘뚝딱’ 언어를 습득하는 능력이 신기한 만큼, 나는 반대로 ‘외국어는 왜 이렇게 배우기 힘들까?’라는 질문에 늘 관심을 가져왔다. 이 책은 아이들의 언어 습득 과정을 소리, 어휘, 문법 영역으로 세분화하여 심도 있게 다루었으며, 우리가 궁금해 하는 이중 언어, 외국어 습득에 대한 이야기를 풍부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이 책이 언어학, 외국어 교육, 언어 치료 등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과 연구자들에게 좋은 교과서로 쓰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송지은(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원)

 

“아이들의 언어 습득 행태를 들여다봄으로써 언어라는 창조적 능력이 인간에게 어떻게 발편되는지를 살펴보븐 책.” —《매일일보》

“말이 정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지 혼란한 현실에서, 아이들의 언어 습득 블랙박스를 통해 인간에 숨겨진 고유한 원리를 살펴본다.” —《한겨레21》

편집자 리뷰

언어로 세상의 문을 여는 아이들: 언어를 선물받다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풍성한 단어장을 갖는 데는 부모와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단어장은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다고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다. 수동적인 자세로 단어, 나아가 언어를 접하게 하는 것은 이 시기 아이들에게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말, 대화를 위해서는 꼭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필요하다. 말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이 두 사람 간의 상호작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본문에서

 

I부는 아이들의 언어 발달 과정에서 출발한다. 돌을 즈음해서 말문을 연 아이들이 대개 약 1년 반 동안 경이로운 속도로 인간 언어의 본질을 습득하는 능력은 2~3세 무렵이면 조금씩 사라진다. 그렇다면 언어 습득 능력을 재가동시키는 방법이 외국어 교육의 관건이 될 것이다. 아이들은 왜 말을 배울까? 말은 왜 필요한 것일까? ‘사람과 사람이 소통을 하기 위해서’이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사회적 행동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배우는 것인가? 타고나는 것인가?」: 모국어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이라는 주장이 우세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인간의 언어를 자극과 반응의 연속으로 이해했다. 언어 체계가 동물의 신호 체계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는 입장에 반해 에이브럼 놈 촘스키는 언어 능력과 언어 수행을 구분하며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말을 하도록 디자인되었다고 보았다.

아이들은 모방을 통해서 언어를 습득하지 않는다. 말을 배우는 데 있어 많이 쓰는 단어, 늘 필요한 단어는 아이들이 별 노력 없이 자연스레 습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말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비단 단어 습득과 언어 습득의 차원이 아니라, 아이들의 전인격적인 발달과 성장에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무궁무진한 말의 세계」: 어떻게 언어를 배우는지 관찰하기 위해 아이들이 종횡무진하며 쏟아 놓는 말들을 일일이 따라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의 데브 로이 교수는 어린 아들이 ‘워터’라는 단어를 발음하기까지 집안에서 촬영한 영상 데이터 9만 시간 분량을 분석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들을 내뱉어 어른들을 놀라게 한다. 유한한 문법 규칙으로 무한한 수의 문장을 만들어 내는 인간 언어만의 고유한 속성과 창조성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말은 못해도 다 알아들어요」: 아이들은 태어날 때 세상 모든 언어의 소리를 구분하고 배울 수 있다가 점차 한 언어(모국어)에만 노출됨에 따라 6개월경 외국어의 소리를 구분하는 능력은 저하되기 시작한다. 자신이 구분하는 말소리들을 발음하지는 못하지만 옹알이 시기를 지나고 12개월 정도가 되면 첫 단어를 발화한다. 조음 기관을 통해 ‘머릿속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데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뿐, 말을 하지 못하는 시기의 아이들에게도 머릿속 사고와 마음속 언어는 이미 존재한다.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반대로 우리의 사고가 언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그 관계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를 논하는 인과 관계의 딜레마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언어의 문이 닫히다」: 아이들의 언어 습득에는 12시가 되면 닫히는 ‘신데렐라의 문’과 같은 시간이 존재해 특정 시기를 놓쳐서 결국 모국어가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여러 언어에 노출되는 것이 꼭 문제는 아니다. 모국어의 기초가 잘 형성되고 다른 언어에 충분하고 자연스럽게 노출되면 여러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이중 혹은 다중 언어 사용자도 있다. 중요한 것은 사고의 언어로 한 가지 언어(모국어)를 자신감 있게 습득해 두는 것이다. 특정 시기에 부모나 양육자와 아이들 간의 깊이 있고 일관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졌을 때 가능해진다

「한 발짝 한 발짝」: 아이들의 언어 습득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시작된다. 청각 기관이 어느 정도 발달하는 약 28주 시기부터 태아들은 엄마의 몸을 지나 전달되는 저주파수대의 제한적인 소리를 듣고 언어 습득을 시작한다. 태아들의 심장 박동수를 측정한 언어 연구들에 따르면, 36~40주 태아들은 부모의 언어에서 일부 모음을 구분하고 모국어와 외국어 발화 시의 목소리, 억양 패턴의 차이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다.

「님 침스키가 하는 말」: 1970년대 중반, 놈 촘스키의 학설처럼 언어가 정말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인지 확인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수화로 말하는 침팬지 님 침스키가 문법을 익히고 나아가 대화에 창의적으로 활용하며 어린 아이처럼 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이 연구는 문장처럼 보였던 말들은 사실 반복에 의한 단순 암기의 결과였거나 특정 문맥에서 적절한 것이었어도 조합에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님 침스키가 인간의 언어를 습득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소리의 세상으로: 새롭게 만나는 세계

 

언어학자들은 아이들을 관찰함으로써 소리 습득에 관한 언어 보편적인 현상, 그리고 언어 특정적인 현상을 발견하고, 아이들의 불완전한 소리 세계 속에 숨어 있는 신기한 언어 원리를 찾으려고 한다. 재미있는 아이들의 소리 세상에 귀를 기울여 보자.-본문에서

 

어른들이 아기들이나 어린 아이들에게 말할 때에는 과장되고 명료한, 혹은 좀 더 아이 같은 말투를 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특별한 말하기 방식은 아이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언어학적으로도 아주 흥미롭다. 물론 아이들은 이를 말을 배우기 위해 거쳐 가는 단계로 인식하고, 때가 되면 금세 자연스러운 발음을 익힌다. 아이들은 언어 습득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튜닝 작업을 거친다.-본문에서

 

II부에서는 음성학적 말소리 연구를 통해 아이들이 소리의 세계를 터득해 가는 원리와 과정을 살펴보는 한편 한국어의 음성 특징을 다룬다. 귀가 들리지 않는 아기가 수화도 배우지 않고 그대로 방치된다면 어떤 종류의 언어도 배우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언어 습득 장치를 가동시키 위해서는 주변 말소리를 듣고, 음성의 실타래에서 단어 경계를 분절해 의미를 배워 나가야 한다.

「제일 먼저 소리부터」: 외국어를 한 번 듣고 나면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차이점을 알아챈다. 프랑스 어는 부드럽고 콧소리가 많이 섞여 있고 독일어는 비교적 딱딱하게 들리며 중국어는 음의 높낮이가 현란하게 변화하는 등 언어들은 저마다 다른 소리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별 어려움 없이 자신의 모국어에 존재하는 소리의 목록을 아주 일찍부터 알아간다. 아이들이 듣는 말소리는 소리 또는 단어 단위로 분절되어 발화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신호다. 따라서 아무런 언어 지식이 없는 아이들은 이 가운데서 단어를 분절해 내고 자음, 모음, 운율, 소리 체계 등을 배워야 한다.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말소리를 발음하는 것은 조음 기관이 발달하는 단계인 아이들에게 쉽지 않은 여정이다.

「우리말의 말소리 목록」: 한국어 화자라면 3세 정도면 쉽게 할 수 있는 /ㅂ/, /ㅍ/, /ㅃ/의 구분이 외국어 학습자들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아이는 모국어라는 렌즈를 통해서 일종의 ‘필터링’을 거쳐 언어의 세상을 접한다. 언어의 소리 목록을 익히는 것은 모국어의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추상적인 소리인 음소와 물리적인 소리인 음성은 마치 스파이더맨과 피터 파커처럼 동시에 같은 음운 환경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먼저 익히는 소리, 많이 말하는 소리」: 언어마다 음소 목록이나 음성의 특징이 모두

다르다. 그러나 범언어적으로 더 쉽게, 더 빨리 배우게 되는 소리는 양순음으로 시작하는, ‘엄마’, ‘아빠’를 의미하는 단어들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함미, 함머니, 할머니」: 아이들은 말소리를 이해하고 구분하는 만큼 정확하게 말, 발화를 하지는 못한다. 뭉뚱그려 말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소리 습득의 과정으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모나 형제, 자매의 경우 이런 아이의 말을 용케도 잘 알아듣는다. 아이들의 ‘얼추 말하기’ 속 체계를 익힌 가족들은 그 발음들을 더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언어 발달이 진행되면서 ‘함미’가 점차적으로 ‘함머니’로, ‘할머니’로 바뀌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목표하는 소리와 비슷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발음하기 쉬운 소리나 음절 구조로 발음한다.

「운율 익히기」: 말소리는 로봇의 소리와 달리 음악처럼 일종의 리듬과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 언어의 운율적 요소들은 의문문, 평서문 등 문장의 종류를 결정짓는 통사적 기능을 하기도 하고 문장 안에 감정을 실어 표현하는 화용적 기능을 하기도 한다. 중국어처럼 성조를 가진 언어에서는 음의 높낮이 패턴에 따라서 말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영어의 강세도 운율에 해당된다.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주변 언어의 운율을 자연스럽게 듣기 시작해 다양한 운율의 기능과 의미들을 하나 하나 터득해 나가며, 일찍부터 감정이나 기분을 표현하거나 요청 등을 하는 의사 소통의 도구로 억양을 사용한다.

 

아이들의 머릿속 사전: 무한한 가능성을 담다

 

언어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들이 처음 배우는 단어 목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엄마’, ‘아빠’와 같은 호칭어들부터 배우고 말하기 시작한다. 특히 호칭어가 발달되어 있는 한국의 아이들은 이 단어들을 더 세세하게 배운다. 사라와 제시의 경우 모두 약 17개월 정도부터 ‘엄마’, ‘아빠’ 이외에도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줌마, 언니, 이모, 삼촌, 사모님’ 등의 단어들을 매우 정확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본문에서

 

Ⅲ부에서는 백지 상태의 아이들이 어떻게 단어의 의미를 터득해 가며 머릿속 사전을 만드는지, 더 나아가 어떻게 말의 구조와 의미를 분석하고 만들어 가는지 살펴본다. 머릿속 사전이 수정과 업데이트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아무렇게나’ 단어들을 집어넣지 않고 패턴과 원칙이 있는 정리 방식 아래 형성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아이들의 단어장에는 어떤 단어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이 단어들이 우리 사회의 변화를 어떻게 반영하는지도 들여다본다.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면서 새로운 단어들을 스스로 만드는 경우는 많지만 아이들이 자기만의 독특한 말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니다. 말을 배우는 과정은 결국 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 약속의 체계를 익혀 나가는 것이다. 보이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나에서 타인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아이들을 단어를 보면 아이들의 단어 습득은 아이들의 인지 발달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조와 의미를 만들고 이해하며」: 영어 화자만큼이나 한국어 화자도 문장의 전개에 따라 정보를 습득해 가며 해당 문장의 구조와 의미가 무엇인지 예측한다. 당연해 보이는 이 논리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으나 이제는 사람들이 동사의 위치에 상관없이 언어의 다양한 기제로 문장을 점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휘 조사 프로젝트」: 필자들은 아동의 어휘 조사 연구인 아도 프로젝트를 실시해 유아기 이후 아동들의 어휘 발달을 살펴보았다. 아이의 의사 소통 발달 양상을 정확히 진단하고 향후 언어 습득 연구, 언어 치료·장애 분야에서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이들의 생활과 밀접하고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어휘 평가지가 중요하다.

 

말 하나 더 배우기: 소통을 위한 비결

 

엄마와 아빠에게서 서로 다른 언어를 듣게 되는 상황에서 아이는 한 언어에만 노출되는 아이에 비해서 더 ‘혼돈스러운’ 소리 세상을 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이 혼돈 속에서도 용케 두 가지 언어를 다 배워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두 가지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이 두 언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본문에서

 

이중 언어 습득에서도 결국 중요한 것은 충분한 언어 자극을 받는 일이다. 특히 2개의 언어를 배울 때에는 습득 과정에서 각 언어에 얼마나 노출되며 얼마나 사용하는지가 습득 속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물론 언어 자극의 단순한 ‘양’이 습득 과정에서 습득의 속도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이중 언어 습득의 성공을 결정하는 유일한 열쇠가 되지는 않는다.-본문에서

 

IV부에서는 외국어 습득에 관한 질문들을 다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모국어는 단 하나의 언어를 의미하지 않는다. 부모의 언어가 자신이 태어나서 자라온 환경의 언어와 다를 수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서만 살지 않고 이동하고 교류한다. 새로운 언어를 환영하고 수용하고 배우는 자세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말이 많은 세상?」: 이중 혹은 다중 언어 사용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흔히 다른 언어를 배운다고 하면 영어나 중국어처럼 학업이나 취직에 도움이 되는 언어만을 떠올리곤 한다. 외국인 이주민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한국어가 아닌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이중 언어 습득 환경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이중 언어 습득의 기회가 제한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여러 언어를 배우는 것이 인지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여러 개의 언어를 습득하는 능력」: 최근 이중/다중 언어 습득 연구에서 주목받는 개념인 트랜스랭귀징, 즉 ‘다언어살이’는 대화 상대와 상황에 맞게 언어를 자유로이 넘나들어 말함으로써 언어의 벽을 허물고 정서적·문화적으로 가장 적절한 의사 소통이 이뤄지도록 해 주며, 때로는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알맞게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이중/다중 언어를 습득하는 아주 어린 아이들은 여러 언어의 요소를 ‘경계 없이’ 선택해 재조합해 한 언어를 사용할 때보다 더 풍부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이중 언어 화자가 한 발화 내에서 두 언어를 섞어 사용하는 코드 스위칭은 특정 개념을 설명한다든가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 준다든가, 혹은 의사 소통의 필요에 따라 사회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정해진 언어를 의식적으로 선택해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fMRI, EEG, MEG 등의 장치들을 이용해 우리가 언어를 이해하고 말할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면서 뇌의 언어 중추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지고 있다. 다중 언어 능력의 신경학적 메커니즘에 관한 초기 연구는 실어증에 걸린 다중 언어 화자들을 연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중 언어 습득은 언제 해당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느냐, 또 얼마나 해당 언어를 많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언어 습득의 정도가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 영국에서 자라난 사라와 제시의 경우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할머니와 함께 있을 때에는 ‘용케도’ 알아서 한국어로만 이야기한다. 말을 갓 하기 시작한 어린 아이들에게도 대화 상대에 맞게 자신의 언어를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대한민국에서 외국어 배우기」: 외국어 습득에서 연령의 영향은 신경적으로 이미 결정된 요소로 간주되지만 함께 고려할 변수 또한 다양하다. 해당 언어 사용국에 이주한 연령뿐 아니라, 해당국에서 언어에 노출된 기간 자체, 모국어가 외국어와 얼마나 비슷한지도 학습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른과 아이는 인지 능력, 자신감, 학습에 대한 동기 등에서 차이가 있다. 즉 언어 생활, 특히 외국어 사용에 있어 언어 지식 이외의인지적인 요소들이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언어 능력을 넘어서」: 모국어를 잃는 것은 한 민족과 문화의 일원으로서 그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매개체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최근에는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중/다중 언어 습득에 이점이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지만, 이전에는 경제적인 이유나 이민 사회 적응을 위해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언어, 부모님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권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했다. 아이의 언어 습득은 충분한 언어 자극만 주어지면 가만히 있어도 숨 쉬듯 얻어지는 것이지만, 2개의 언어를 배울 때, 그리고 외국어를 배울 때에는 그 언어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느냐가 언어 습득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중 언어 습득과 인지 발달」: 이중 언어의 습득과 사용은 2개의 언어를 할 줄 아는 데서 오는 유리함 외에도 뇌의 수행 통제 능력에도 영향을 미쳐 주의력, 인지 조절 능력 같은 인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다만 학계에서는 이중 언어 습득의 인지적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하는데 단일어 사용 집단과 이중/다중 언어 사용 집단이 언어 사용뿐 아니라 문화적, 사회 경제적 지위가 다르다는 점 때문이다.

“당신이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을 한다면, 그 말은 그 사람의 머릿속으로 갑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상대방의 언어로 말을 한다면 그 말은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갑니다.” 타인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강조한 넬슨 만델라의 말이다. 다른 언어를 안다는 것은 그 언어와 연관된 또 다른 문화를 잘 이해한다는 의미이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언어 지식을 습득하는 것 이상으로, 개인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언어의 아이들이 그 언어를 잃지 않고 언어의 어른들로 자라기 위해서는 언어라는 도구가 우리의 삶과 마음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목차

I 언어로 세상의 문을 여는 아이들

배우는 것인가? 타고나는 것인가? | 무궁무진한 말의 세계 | 말은 못해도 다 알아들어요 | 언어의 문이 닫히다 | 한 발짝 한 발짝 | 님 침스키가 하는 말

II 소리의 세상으로

제일 먼저 소리부터 | 우리말의 말소리 목록 | 먼저 익히는 소리, 많이 말하는 소리 | 함미, 함머니, 할머니 | 운율 익히기

III 아이들의 머릿속 사전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다 | 구조와 의미를 만들고 이해하며 | 어휘 조사 프로젝트

IV 말 하나 더 배우기

말이 많은 세상? | 여러 개의 언어를 습득하는 능력 | 대한민국에서 외국어 배우기 | 언어

작가 소개

조지은

서울 대학교 아동가족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언어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KCL)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동 아시아학부에서 한국학과 언어학을 가르치고 있다. 언어의 구조와 의미 연구를 수행하고 현재는 이중 언어 습득 관련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에 『한국어 속에 숨어 있는 영어 단어 이야기』(박이정출판사, 2014년), 『화용적 통사론(Pragmatic Syntax)』 (Bloomsbury, 2014년), 『상호언어적 단어(Translingual Words)』(Routledge, 2018년) 등이 있다. 한국어-영어 이중 언어 화자인 두 딸 사라와 제시의 엄마이기도 하다. 아이들 이 말을 배우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송지은

서울 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음성 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UCL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주로 인간의 뇌파를 살펴봄으로써 말소리에 담긴 다양한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연구한다. 언어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이 실질적 언어 환경에서 ‘의사 소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언어적, 인지적 원리를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다. 음성학과 이중 언어 습득의 다양한 주제에 관해 활발하게 연구 중이다.

독자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