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바티칸에 봉인된 불편한 진실 과학 혁명의 \'확신범\' 갈릴레오를 만나다

갈릴레오

교회의 적, 과학의 순교자

원제 Galileo Antichrist: A Biography

마이클 화이트 | 옮김 김명남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 발행일 2009년 4월 30일 | ISBN 978-89-837-1236-3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45x215 · 432쪽 | 가격 20,000원

책소개

바티칸에 봉인된 교회의 불편한 진실
갈릴레오는 교회의 적인가, 과학의 순교자인가?

265대 로마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갈릴레오의 망원경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고자 열린 ‘2009 세계 천문의 해(IYA2009)’ 행사에서 “자연계의 근본적인 법칙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던 일을 인식하는 것에 큰 도움이 준다.”라고 밝히며 과학계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지만 교황의 이러한 발언과 관련해 한 가지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다. 바로 교황이 예전에 갈릴레오 재판과 관련, 교회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발언이 18년 만에 그의 발목을 잡은 사실이다.
지난해 1월 17일 창립 705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로마의 사피엔차 대학교에서 한 가지 소동이 일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방문이 교수진 67명을 포함, 학생들의 거부로 인해 취소된 것이다. 이것은 교황이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던 시절 사피엔차 대학교에서 한 강연에 대한 반발이었다. “갈릴레오의 시대에 교회는 갈릴레오보다 더 이성에 충실했다. 갈릴레오에 대한 기소 과정은 이성적이고 공정했다.”라는 그의 강연 중 발언이 전해지자 전 세계 과학계는 들끓었고,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으로 거론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 사건은 갈릴레오 재판, 즉 과학 대 종교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갈릴레오는 성서에 나오는 적그리스도(anti-Christ)에까지 빗대어지며 이단자로서 취급되었다. 그러나 종교 개혁과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갈릴레오는 이성에 대한 교회의 억압에 저항했으나 좌절하고 만 위대한 ‘과학의 순교자’로, 종교의 권위에 저항하는 과학의 ‘수호 성인’으로 평가받게 된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평생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살았으며, 그의 과학 연구의 최대 후원자는 추기경과 교황이었다. 이 모순의 실체는 무엇이고, 갈릴레오 재판의 전설 중 무엇이 진실인가?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갈릴레오: 교회의 적, 과학의 순교자(Galileo Antichrist)』는 바로 과학사적 성의 후광에 가린 갈릴레오 전설의 진실과 바티칸 교황청에서 숨겨 온 갈릴레오 재판의 진실을 낱낱이 공개하는 책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초의 과학자』(사이언스북스,) 같은 독특한 과학 저술로 과학사의 이면을  과학 저술가인 마이클 화이트(Michael White)는 지난 400년 동안 바티칸 문서 보관소에서 잠자다가 비로소 공개된 갈릴레오 관련 문서 전문을 철저하게 분석해 갈릴레오의 파문을 취소하고 과학계에 화해의 손을 내미는 바티칸의 속내에 의문을 제기하며, 갈릴레오라는 위대한 과학자의 인간적인 속살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교회는 진심으로 갈릴레오를 사면했는가?

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단자 갈릴레오에 관한 기록은 통제 대상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그 기록을 그토록 오랫동안 철저하게 감춰 온 것일까? 1981년 7월, 선대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의 지시로 바티칸에 갈릴레오 위원회라는 이름의 조사단이 꾸려진다. 처음 요한 바오로 2세는 갈릴레오의 사면과 과학계와의 화해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이것은 그의 즉위 초기 발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신학자들, 학자들, 역사학자들이 신실한 협동심으로써 갈릴레오 사건을 더 깊이 연구하기를 바랍니다. 어느 편의 잘못으로 밝혀지든 그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함으로써 아직도 교회와 세상이 상호 동의하는 결실을 맺을 수 없다고 하는 불신을 사람들의 마음에서 몰아내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 작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입니다. 이 작업은 신앙의 진리와 과학의 진리를 영예롭게 하고, 미래의 협동으로 가는 문을 열어 줄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그러나 갈릴레오 위원회의 활동은 극도로 지지부진하게 이루어졌고, 위원회의 보고서는 11년이나 지난 1992년 10월 31일에야 공식 발표되었다. 이때《뉴욕 타임스》는 바티칸의 성명에 대해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비로소 교회가 인정했다는 재미있는 논지의 기사를 싣기까지 했다. 이제 로마 가톨릭 교회가 과학을 인정하고 종교와 과학의 전쟁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극히 모호한 표현으로 가득한 이 보고서는 과학의 발전, 종교의 쇠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바티칸의 속내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마이클 화이트의 의심은 바로 종교와 과학의 화해 선언이라고 할 이 보고서에서 출발한다.
이 보고서는 마지못해 태양 중심설이 옳았음을 인정하고 갈릴레오를 가톨릭교도로서 사면·복권하지만 과학 발전을 가로막았던 교회의 오류에 대해서는 모호한 표현으로 일관한다. 우선 요한 바오로 2세는 위원회 설립을 지시하면서 과학계와 교회가 “상호 동의하는 결실”을 얻자고 제안하고, 교회가 과학자를 “불공정하게 취급”했을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1992년의 보고서는 “상호 몰이해”니 “갈릴레오 신화”니 하는 책임 회피적이고 과학계 스스로의 문제를 지적하는 모호한 표현으로 교회의 책임을 은근슬쩍 시대 상황이나 오만한 유물론에 갇힌 과학계 떠넘긴다.

계몽 시대의 시작부터 지금 우리 시대까지, 갈릴레오 사건은 일종의 신화였습니다. 사실들을 짜 맞춰 만든 하나의 이미지였는데, 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갈릴레오 사건은 교회가 과학 발전을 억제하려 했다는, 혹은 자유로운 진리 탐구에 반대하며 교조적인 반계몽주의를 추구하려 했다는 주장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신화는 문화적으로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좋은 신앙을 가진 많은 과학자들의 마음에 과학 정신과 연구 규칙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 놓았습니다.-본문 중에서

인류가 지상을 벗어나 달까지 다녀온 시대에도 교회가 여전히 천동설과 지동설의 논쟁이 얽혀 있는 갈릴레오 재판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러한 정황을 보면서 마이클 화이트는 교회의 속내에 의심을 품는다. 또한 갈릴레오 재판의 진실이 표면상 핵심 쟁점인 천동설과 지동설의 대립이 아니라, 감춰진 쟁점에 얽혀 있지 않은지 의심한다. 도대체 교회는 무엇이 두려워 갈릴레오를 재판에 회부했던가? 아니 종교 재판에 걸 정도로 지동설이 위험한 사상이었다면 이단 혐의를 받은 갈릴레오를 겨우 30년 전에 화형시킨 조르다노 브루노처럼 죽여 버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400년 동안 바티칸이 감춰 왔던 갈릴레오 재판의 비밀!

과학자들은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움직인다. 종교의 지지자들은 두려움에서 움직인다.-본문 중에서

가톨릭 교회에게 실체 변화와 성찬식은 제일의 집착 대상이다. …… 그 해석이야말로 가톨릭을 다른 기독교 신앙과 구별해 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 오늘날의 교회는 더는 신교의 침범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급속도로 세속화하는 현대에서 신자들에게 안정된 신앙의 발판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본문 중에서

역사학자 피에트로 레돈디는 실체 변화(교회가 생각하는 성찬식의 메커니즘) 개념에 대한 가톨릭의 집착을 이렇게 표현했다. “성찬식의 역사는 길고 복잡하다. 이성과 신앙이 내내 갈등을 빚어온 역사이다. 지동설이라는 천문학적 진실에 대한 반대는 이 문제에 비하면 짧고 주변적인 일화에 불과하다.”-본문 중에서

바티칸이 감춰 온 갈릴레오 재판의 진실은 종교와 과학의 어두운 거래와 협상이었다. 갈릴레오 재판은 천동설과 지동설로 대표되는 세계관과 세계관의 충돌이라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었고, 교회가 지동설보다 더 위협적으로 생각했던 과학 이론을 덮기 위해 겉으로는 교리를 내세워 과학자를 가두고, 과학자의 회개 선언을 얻어낸 사건이지만 속으로는 과학자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과학자와 협상을 한 사건이었다. 코페르니쿠스를 둘러싼 문제가 미끼에 불과했을지도 모르며 천동설 대 지동설, 가설 대 입증 가능한 사실이라는 문제는 위장이라는 것이다.
마이클 화이트는 재판이 있은 지 350여 년이 흐르고, 교황청의 새로운 보고서가 발표되고도 10년 가까이 지난 뒤인 1999년에 공개된 갈릴레오 문서(갈릴레오에 대한 세 쪽짜리 문서라는 의미에서 오늘날 G3 문서라고 불린다.)와 애초에 갈릴레오를 화형대로 보낼 생각으로 갈릴레오 재판 당시 교황청에 보관되어 있던 갈릴레오에 관한 문건들을 분석한 인코페르의 보고서 EE291 문서(문서철 EE권의 292장 앞뒤에 철해져 있어 이렇게 불린다.)를 발굴․연구한 역사학자인 마리아노 아르티가스의 과학사적 성과와 자신의 통찰을 바탕으로 갈릴레오 재판이 일종의 쇼였음을, 교회를 진정으로 위협하는 과학 이론에서 살짝 덜 위험한 지동설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고도로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쇼였음을 보여 준다.
교회가 실제로 가장 위험하게 생각했던 갈릴레오의 과학 이론은 1624년에 출간한 『시금사』에서 논한 원자 이론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개념을 반박하는 원자 이론은 로마 가톨릭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인 ‘성찬식 교리’를 완전하게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물이 ‘실체성과 우유성(偶有性)’ 혹은 ‘본질과 형상’이라는 이중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이론은 평범한 빵과 포도주가 성찬식을 통해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체 변환’한다는 로마 가톨릭의 성찬식 교리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 이론이 천체 이론 같은 물리학 이론들을 실험을 통해 하나하나 논파해 나가던 갈릴레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이론마저 오류일 수 있음을, 즉 물질이 ‘원자’라고 하는 한 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제시했고, 이는 성찬식 교리의 실체 변환 이론을 파괴할 수 있을지도 모를 파괴력을 가진 것이었다.
이 이론이 『시금사』로 처음 발표되었을 때에는 계몽주의 지식인 일부와 엘리트 사제 중 일부의 눈에만 파괴적인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보였고, 다른 논쟁에 묻혀 버렸다. 그러나 갈릴레오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명성이 높아지면서, 적이 늘어났다. 많은 이들이 갈릴레오를 화형대에 보내고 싶어 했지만, 교황청과 메디치 가에 포진한 힘 있는 후원자들과 갈릴레오 자신의 명성과 성공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1632년 갈릴레오가 자신의 천문학 이론을 종합한 ꡔ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 두 가지 주요한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ꡕ(이하 ꡔ대화ꡕ)를 출간하자 수많은 갈릴레오의 적들이 이 책을 곱씹으며 갈릴레오가 무슨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갈릴레오가 당시 교황이자 갈릴레오의 오랜 후원자였던 우르바노 2세에 대해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교황이 예전에 했던 발언을 ꡔ대화ꡕ라는 책의 등장인물 중 과거의 과학관을 가지고 있는 심플리초를 통해 인용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것을 꼬투리 삼아 갈릴레오를 바티칸에 고발했다.
갈릴레오가 오랜 후원자의 뒤통수를 쳤다는 식으로 악의적으로 각색된 고발을 접한 교황은 갈릴레오의 이단 혐의를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1632년, 예수회 신부이자 반코페르니쿠스이자 반갈릴레오주의자로 갈릴레오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인코페르가 교황청에서 이미 1616년에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설파하지 말 것을 명령받았고 1624년에는 『시금사』에서 논한 원자 이론이 성찬식 교리에 맞선다 하여 고발당한 바 있다는 문건(G3 문서)을 발견했다. 인코페르는 이것이 갈릴레오를 화형대로 보낼 증거라고 생각해 보고서(EE291 문서)를 작성해 바티칸 상층부에 보고했다.
그러나 바티칸 상층부는 오히려 갈릴레오를 성찬식 교리를 위협하는 원자 이론을 가진 자로 고발하는 것이 교회에 더 위협적일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유럽 지식계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갈릴레오의 명성과, 당시 독일 쪽의 개신교 진영과의 치열한 교리 논쟁 과정에서 갈릴레오 재판을 통해 갈릴레오가 ‘성찬식 교리’에 과학적인 반박을 가하고, 교회의 반박 논리가 다시 논파되는 것을 두려워 한 것이다.
바티칸 상층부는 로마로 불러 가둬 둔 갈릴레오와 만남 협상을 진행한다. ‘가설’에 불과한 코페르니쿠스 우주 모형을 과학적 진실인 양 소개한 오류를 처벌받고 목숨을 부지시켜 주는 대신, 성찬식 교리를 파괴할지도 모른 원자 이론에 대한 연구와 출판을 하지 말라는 조건을 갈릴레오에게 제시하고, 갈릴레오로 하여금 그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한다. (이러한 협상은 바티칸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종교 재판의 원칙을 스스로 어기는 것이었다. 종교 재판은 피고에게 어떤 혐의로 누가 어떤 증거를 가지고 고발했는지 피고가 알 수 없게 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결국 갈릴레오는 이러한 제안에 굴복하고 갈릴레오 재판 그 후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방식대로 진행되었고, 갈릴레오는 교회를 공공연하게 무시하고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지지했기 때문에 재판을 받았다고 알게 되었다.  

교회가 갈릴레오를 “용서”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교황청은 이러한 재판 과정의 비밀이 공개되지 않도록 “집요할” 정도로 세심하게 신경 썼다. 일단, G3 문서와 인코페르의 보고서 EE291 문서는 검사성성에서 아주 잠깐 조명을 받았다가, 다시 문서 보관소로 사라졌다. 이 문서들은 1982년에 갈릴레오 학자인 피에트로 레돈디가 G3 문서를 발굴해 내고, 1999년에 역사학자인 마리아노 아르티가스가 EE291 문서를 발견하기 전까지 바티칸의 철저한 보호 장벽과 의도적 무관심 속에 묻혀 있었다.
1870년대, 바티칸 비밀 문서 보관소 소장이었던 가에타노 마리니가 갈릴레오 사건과 관련해 일반인을 위한 책에 자료 일부를 발췌해 소개했다. 1880년에 교황 레오 13세는 비밀 문서들 중 일부를 잠깐 공개했지만 교황청은 정보 유출을 세심하게 통제했다. 1941년에 교황 과학 아카데미는 갈릴레오 사망 300주년을 맞아 교황청 대학교의 교회사 교수인 비오 파스치니에게 교회의 입장을 변호한 갈릴레오 평전 집필을 의뢰했고, 파스치니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원고를 준비하지만, 바티칸 내부의 “바로잡기” 과정을 거쳐 24년이 지난 1965년에 비로소 출간되었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의 조사 지시 이후 간신히 발표된 1992년의 보고서 역시 갈릴레오와 교회 사이의 갈등을 “신화”로 묘사함으로써 교회가 과학을 박해하고 재판정에 세우고 처벌했던 일 전체를 묻어 버리려 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와 갈릴레오의 책 전부는 1835년까지 금서 목록에 남아 있었고, 갈릴레오는 1992년에야 사면․복권되었다. 또한 바티칸 궁에 갈릴레오의 조각상을 건립키로 허가가 내린 것은 불과 지난해의 일이다. 최근 바티칸에서는 갈릴레오를 믿음과 이성 간의 대화를 도모하는 “수호자”로서 명명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불편하고도 오랜 갈릴레오와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갈릴레오와 교회의 몇몇 사람들 간의 극적인 충돌은, 오늘날에도 역시 상처만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마이클 화이트는 이 모든 과정을 추적하면서 교회는 갈릴레오의 입을 막아 성찬식 교리를 지켜내고자 대신 코페르니쿠스 문제로 초점을 돌렸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갈릴레오 재판이 과거에 벌어져 끝나 버린 사건이 아니라 현재도 살아 있는 사건임을 보여 준다. 한때, 과학자를 탄압해 전통 교리가 무오류임을 보여 줌으로써 자신의 신도들에게 종교적 안정감을 서비스해 온 종교가 현재에도 그러지 않을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라칭거 추기경은 교회의 수장이 되기 전에 말했다.…… “성체 성사는 곧 하느님이다.” …… 가톨릭은 지금도 일종의 마술적 행위에 신앙의 토대를 두는 셈이다. 이런 믿음이 있는 한, 교회가 갈릴레오를 “용서”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갈릴레오 사건의 추악한 진실이 대중에게 밝혀지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본문 중에서

과학 혁명의 확신범, 갈릴레오의 전설과 진실

갈릴레오가 과학적 추론을 발견하고 활용했던 것은 인류의 사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었고, 물리학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교회와의 갈등 말고도 이 책에는 다양한 정보가 많이 있다. 1992년 교황청 갈릴레오 위원회의 보고서와 1999년에 공개된 문서들은 시시비비를 뒤로하고 엄청난 정보의 보고였다. 마이클 화이트는 새로 공개된 문서들과 과거에 축적된 수많은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과학 혁명의 확신범”이었던 갈릴레오의 삶을 재조명해 낸다.
끝내 결혼하지 않고, 독신의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애인과 그 애인이 낳은 아이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평생 거두지 않았던 갈릴레오의 사랑 이야기, 고집스러운 어머니와 방탕한 동생에게 시달렸던 갈릴레오의 애환, 학자로서의 야심과, 뛰어난 학문적 능력은 물론이고 자신의 반대자들을 과감하게 조롱할 수 있었던 갈릴레오의 문장력과 유머 감각, 종교 개혁과 르네상스, 정치적 분열과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이탈리아에서 수많은 권력자와 추기경들을 자신의 후원자로 만들기 위해 발휘해야 했던 갈릴레오의 정치적 노력 등을 재기 넘치는 문장으로 엮어 위대한 과학자를 생생하게 되살려 내는 이 책은, 천문학이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와 우주를 꿈꾸는 올해에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일 것이다.  

갈릴레오는 과대평가된 인물일까? 오히려 그 반대다. 그의 이야기가 곧잘 전설로 둔갑했던 이유는 그가 그만큼 극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고, 그가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이유는 그처럼 치열하게 경쟁자들과 적들과 시대와 드잡이하지 않고서는 자유롭게 철학과 수학을 연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철학과 수학에 대한 집요한 사랑 때문에 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확신범이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신권 정치의 공포를 절묘하게 때맞춰 경고하는 책. 종교가 개인을 얼마나 억압하고 과학을 정체시키는지 보여 준다. ―《가디언》

똑똑하고 재치 있는 대중 작가인 화이트는 확실한 역사적 사실과 교묘한 음모 이론을 잘 결합해 서술했다. ―《더 타임스》

선악 구도의 떠들썩한 다툼을 좋아한다면, 그리고 해리 포터 시리즈 다음으로 무엇을 읽을까 고민 중이라면 이 책을 들라. ―《데일리 텔레그래프》

목차

서문 9   |  
1장 그 아버지에 그 아들 17   |   2장 종교라는 구속 33   |   3장 갈릴레오 이전의 과학 49   |  
4장 이유 있는 반항 75   |   5장 아리스토텔레스 까발리기 95   |   6장 산뜻한 시작 109   |  
7장 갈등 129   |   8장 수정 같은 달 151   |   9장 교황의 비밀과 성스러운 음모 171   |  
10장 싸움을 시작하다 207   |   11장 폭풍 전야의 고요 237   |   12장 신성하지 못한 음모 265   |  
13장 교회의 완력 285   |   14장 재갈 물린 삶 323   |   15장 불사조 되살아나다 341   |  
16장 21세기의 마술 349   |   부록 1. 주요 인물들 361   |  
부록 2. 토스카나의 크리스티나 대공 부인께 드리는 편지(1615년) 370
원문 출처 376   |   참고 문헌 384   | 옮긴이의 말 387   |   찾아보기 391   |   그림 출처 399

작가 소개

마이클 화이트

영국의 과학 저술가로, 옥스퍼드 도버브로에크스 대학의 과학 교수를 지냈고, ‘GQ’지의 과학저술가, 디스커버리 채널의 상담가 등으로 활동하였다. 지은 책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초의 과학자>, <톨킨-판타지의 제왕>, <스티븐 호킨 과학의 일생>, <천재 과학자들의 경쟁과 성패> 등이 있다.

김명남 옮김

카이스트 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대학교 환경 대학원에서 환경 정책을 공부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편집팀장을 지냈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55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분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갈릴레오』, 『세상을 바꾼 독약 한 방울 』, 『인체 완전판』(공역),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여덟 마리 새끼 돼지 』, 『시크릿 하우스』, 『이보디보』, 『특이점이 온다』,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버자이너 문화사』,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등이 있다.

독자 리뷰